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슈에서 한 구조대원이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뒤지며 생존자 수색을 하고 있다. 전날 시리아와 인접한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잇따라 일어난 규모 7.8, 7.5의 강진으로 지금까지 양국에서 8천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카흐라만마라슈[튀르키예] 신화/연합뉴스
“구조대가 너무 늦게 왔어요.”
이틀 전 새벽 규모 7.8의 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의 표정은 예상보다 차분한 모습이었다. <한겨레> 취재진을 태우고 8일 0시45분 출발한 터키항공 비행기는 새벽 6시40분께(현지시각) 이스탄불 활주로에 안착했다. 악천후로 인해 구출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는 외신 보도대로 어둑한 새벽하늘엔 비인지 진눈깨비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것들이 내리고 있었다.
새벽 공항의 정적 아래서 슬픔이 꿈틀대고 있었다. 공항에서 만난 귈숨(28)은 7개월이 갓 넘은 아이와 함께 이스탄불에 사는 가족들이 자신을 데리러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카트에 자주색 커다란 여행 가방을 싣고, 모자와 담요로 무장한 어린아이를 안은 채였다. 이번 대지진의 진원지인 남부 도시 가지안테프에서 동북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아드야만(아디야만)에서 온 귈숨은 “도시의 절반은 아직 잔해 아래에 덮여 있다. 구조대는 사람들을 살리기에는 너무 늦게 왔다”고 말했다.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알려달라는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주변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린다던 다른 남성은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8일 오전(현지시각) 터키 이스탄불 국제공항 알림판에 지진 피해 희생자를 추모하는 리본이 표시돼 있다. 이스탄불/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8일(현지시각) 오후 9500명을 넘겼다고 <에이피>(AP) 등 외신이 보도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사망자가 7018명으로, 부상자는 4만910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는 정부 통제 지역에서 1250명이 숨지고, 부상자 2054명이 다쳤다고 밝혔고, 반군이 장악한 북서부 지역에선 사망자가 1280여명, 부상자가 2600여명으로 늘어났다고 해당지역 구호단체가 밝혔다. 전날 자정께 3400명에서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필사적인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피해 지역이 동서로 디야르바크르(디야르바키르) 지역에서 아다나 지역까지 450㎞, 남북으로 말라트야(말라티아)에서 하타이까지 300㎞에 달하며, 이곳엔 1350만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리아에서는 진앙인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250㎞ 떨어진 지역까지 지진 피해를 입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두 나라의 지진 피해 지역에 사는 이들이 2300만명에 이른다며 각국에 지원을 촉구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신속한 구조가 중요하다며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1분, 1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자를 찾아낼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를 강타한 대형 재난의 흔적은 출국장으로 나오는 복도에 이어진 흰색 리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면세점 입구에도 ‘지진이 튀르키예를 강타했다’(Earthquake Hits Turkey)는 영어와 함께 커다란 애도 리본이 걸려 있었다. 리본 다음에는 빨갛게 펄럭이는 튀르키예의 국기, 그다음엔 튀르키예어로 ‘국가 애도’라는 글씨와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시민들에게 신의 자비가 내리고 부상자는 빨리 쾌유하기를 바란다’는 문구를 읽을 수 있다. 휴대전화로 정보무늬(QR코드)를 촬영하면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에 소액(20터키리라, 약 1300원)을 기부할 수 있는 광고도 보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8일(현지시각) 지진 피해지역인 남부 카라만마라스에서 피해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피해 현장을 둘러본 뒤 취재진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있기는 불가능하다”고 거듭 말했다. 카라만마라스[튀르키예]/AP 연합뉴스
이날 이스탄불 공항에선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서 이륙한 국내선 비행기가 많게는 7시간씩 연착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귈숨처럼 이 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저마다 커다란 담요로 몸을 두른 상태였다. 과자가 담긴 비닐봉투를 든 이들도 있었다. 아는 이를 만나자마자 뜨겁게 포옹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외신들은 지진 이후 벌써 사흘이 지나는 동안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 현장 사람들의 외침을 전하고 있다. 지진 피해를 입은 말라트야 주민 무라트 알리나크는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집을 잃은 채 아무것도 없이 눈이 내리는 데서 머물고 있다. 내가 뭘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구조대원이 도착하지 않아 주민들이 맨손으로 폐허 속을 뒤지고 있다며 “국가는 어디 있나? 이틀 동안 대체 어디에 있었나?”라고 물었다. 하타이주의 주도 안타크야(안타키아)에도 주민들이 직접 폐허 속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는 형편이다. 시리아의 상황은 더 처참하다. <시엔엔>(CNN)이 7일 전한 영상을 보면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북서부 도시 하람 인근의 한 마을에서 콘크리트 사이에 끼인 소녀가 남동생을 안고 “구해주세요. 당신의 종이 될게요”라고 말하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7일 지진 피해를 입은 10개 주를 재난 지역으로 설정하고 3개월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또 피해 지역에 5만명 이상의 구호 인력을 파견하고 53억달러(약 6조7천억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금까지 8천명 이상을 구조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라며 서부 관광 중심지 안탈야(안탈리아)의 호텔들을 이재민 임시수용 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70여개국도 구조대 파견 또는 구호품 지원에 나섰다. 독일에서 급파돼 이날 아다나 공항에 도착한 구조대원 요하네스 구스트는 <로이터> 통신에 “피해 지역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규모가 큰 피해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스탄불/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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