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튀르키예의 우려를 내세우며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승인 연기를 시사했다. 국정 연설을 하고 있는 오르반 총리. 부다페스트/AP 연합뉴스
튀르키예(터키)에 이어 헝가리도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승인 연기 움직임을 보이고 나섰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에 이어 그의 측근이 의회의 두나라 나토 가입 비준 투표 연기를 시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게르겔리 굴리아스 총리실 담당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의회가 27일부터 두 나라의 나토 가입 비준을 위한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비준안 통과를 위한 표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표된 의회 일정표를 보면 오는 6일 표결이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헝가리의 입법 절차에 따르면 의안 채택까지는 4주 정도가 걸린다며 “의회가 3월 넷째주에나 표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이런 발언은 오르반 총리가 지난 24일 처음으로 두 나라의 나토 가입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이후 나왔다. 오르반 총리는 공영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집권 여당인 ‘피데스’(헝가리 시민동맹) 의원들에게 두나라의 나토 가입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하면서도 비준을 위해서는 토론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두 나라의 가입을 지지하지만 (승인에 앞서) 몇몇 사안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오르반 총리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헝가리의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해 “명백한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튀르키예가 스웨덴에 대해 표명하고 있는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튀르키예 또한 우리의 우방이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지난해 5월 나토 가입을 신청하자, 자국이 테러 집단으로 지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 조직원 송환을 스웨덴에 요구하며 송환 대상자 120명의 명단을 전달했다. 하지만 스웨덴이 이들의 송환을 늦추는 데다가 지난달 21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튀르키예 대사관 앞에서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불태우는 반 튀르키예 시위가 벌어지자 나토 가입 문제를 논의할 스웨덴·핀란드와의 3자 협의를 연기시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승인만 먼저 처리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30개 회원국 전체의 승인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튀르키예와 헝가리만 승인을 미루고 있다.
튀르키예에 이어 헝가리까지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승인 연기 움직임을 보이면서 나토는 물론 유럽연합(EU) 내에서도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헝가리는 유럽연합 차원의 러시아 제재에 잇따라 제동을 걸며 제재 수위를 낮추는 시도를 해왔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거부하고 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은 최근 모든 나라가 지체 없이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을 승인할 것을 기대한다며 헝가리 등 두 나라를 거듭 압박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