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지난해 7월 정부의 농업 부문 질소 배출 억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농민이 없으면 식량도 없다”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암스테르담/EPA 연합뉴스
유럽의 농업 대국인 네덜란드에서 농업 부문의 질소 억제 정책이 최대 선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쪽 전문가들이 유럽연합(EU)의 환경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농업 배출량을 40%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질소 정책에 반대하는 농민 정당의 지지율이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오르고 있다.
질소 정책이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자, 크리스티아네 판데르발 농업 및 질소정책 장관이 농업에서 질소를 줄이지 못하면 새로운 주택이나 사회 기반 시설 건설이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하고 나섰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판데르발 장관은 인터뷰에서 “신규 주택 건설이나 지속가능한 에너지 기반시설 투자 여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소를 줄여야 한다”며 “이것이 우리 경제가 직면한 제약”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환경 오염과 온난화 유발 물질로 꼽히는 암모니아와 질소산화물 등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기로 하고 이달 초 부문별 감축 목표를 정했다. 에너지와 산업 부문은 2019년 대비 38%를 감축하고, 교통 부문은 25%를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전체 질소 배출량의 46% 정도를 차지하는 농업 부문은 농민들의 반발 등으로 아직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쪽 전문가들은 41% 감축을 제안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주요 자연보호 지역 인근에 있는 농장 3천 곳을 사들여 폐쇄하는, 특단의 대책까지 들고 나왔다. 정부가 특히 문제로 보는 시설은 양돈 등 축산 시설이다. 판데르발 장관은 “농장을 옮기거나 폐쇄하거나, 아니면 시설을 개선하는 선택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54%는 정치인들이 농촌 지역을 외면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민들의 질소 정책 항의 운동 과정에서 탄생한 정당인 ‘농민시민운동’(BBB)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아이앤드오(I&O) 리서치’가 지난 10~13일 실시한 조사에서 이 정당은 11.5%의 지지율로 집권여당인 자유민주국민당(13.3%)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이뤄진 입소스의 조사에서는 9.5%로 자유민주국민당(17.7%), 극우 성향의 자유당(11.5%)에 이은 3위였다.
농민시민운동의 공동 설립자 한크 페르메이르는 그동안 전통적으로 기독교민주당을 지지하던 농민들이 최근 자신들 지지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의회가 있는) 헤이그의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3월 15일 선거로 구성되는 지방정부는 상원 의원 선출 권한이 있기 때문에 농민시민운동이 지방선거에서 선전할 경우, 현 정부의 질소 정책에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현재의 여론조사 추세를 보면, 농민시민운동과 자유당이 상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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