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왼쪽)과 알빈 쿠르티 코소보 총리(오른쪽)가 27일(현지시각)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왼쪽에서 두번째)와 만나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민족 갈등을 빚고 있는 발칸반도의 세르비아와 코소보가 27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이 제시한 관계 정상화 중재안을 일단 수용했다. 하지만, 세부 방안에 대한 추가 논의가 예정되어 있어 중재안이 언제부터 이행될지는 불투명하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알빈 쿠르티 코소보 총리와 삼자 회의 뒤 단독 기자회견을 열어 “유럽연합의 중재안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 없다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보렐 대표는 중재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밝히지 않은 채, 중재안이 이행되면 세르비아와 코소보가 여권 등 신분증과 외교 증빙 서류를 서로 인정하면서 두나라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며 두 정상이 다음달 다시 만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나라는 모두 유럽연합 가입을 희망하고 있어, 유럽연합의 중재를 거부하기 어려운 처지다. 하지만, 부치치 대통령과 쿠르티 총리는 상대 국가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쿠르티 총리는 두 사람이 중재안 문안을 받아들였는데도 세르비아쪽은 중재안에 서명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치치 대통령은 “우리가 약간의 타협에 합의하기를 희망하지만 쿠르티 총리는 이에 대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맞받았다.
두 나라는 코소보가 2008년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했으나 세르비아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특히 지난해 여름부터는 코소보 북부 지역에 몰려 사는 세르비아계 주민의 권리 보장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두 나라의 무력 충돌 우려까지 제기됐다.
지난 7월 코소보 정부가 세르비아 정부가 발급한 자동차 번호판을 금지하는 조처를 발표하자, 이를 주권 문제로 받아들인 세르비아계 주민이 곳곳에서 항의 시위에 나섰다. 세르비아계 경찰과 판검사까지 집단 사퇴하면서 치안 공백도 빚어졌다. 이 문제는 유럽연합의 중재로 일단락됐으나, 12월에는 앞서 사퇴했던 세르비아계 경찰 한명이 경찰 순찰대를 공격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갈등이 다시 고조됐다. 주민들은 이 지역 주요 도시 미트로비차의 도로를 며칠 동안 봉쇄하고 경찰 등과 대치하면서 항의를 이어갔다. 상황이 날로 심각해지자 유럽연합과 미국이 개입해 긴장을 완화시켰고, 이후 유럽연합은 두 나라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재에 집중하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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