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9일 쿠트로 시청에서 내각 회의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아프리카와 중동 난민들이 탄 배가 지중해 연안에서 난파되는 사건이 계속되자 이탈리아 정부가 밀입국 브로커에 최대 징역 3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안을 발표했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9일(현지시각) 수도 로마 대신 남서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칼라브리아 쿠트로에서 내각 회의를 열고 밀입국 브로커를 강력 처벌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회의에는 칼라브리아 주지사,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과 인프라부 장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회의 뒤 기자회견을 열고 브로커가 위험한 밀입국 경로를 알선해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 브로커를 최대 3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는 “비극의 원인이 된 ‘인신매매’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며 밀입국 브로커를 ‘인신매매범’이라 칭했다. 이어 그는 “희생자를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쿠트로는 지난달 26일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시리아 등 중동에서 온 이주민 약 180명을 태운 목선이 난파해 주검 72구가 발견된 곳이다. 이탈리아 내각이 수도 로마가 아닌 쿠트로 시청에서 회의를 열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멜로니 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아에프페>(AFP)는 짚었다.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 연안은 아프리카 튀니지나 리비아 등에서 목선이나 고무보트 등을 타고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민들이 주로 닿는 곳이다.
26일 최소 72명의 이주민이 사망한 난파선 현장 근처에 있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역 쿠트로 시청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내각회의를 하고 기자회견을 했다. 왼쪽부터 이탈리아 남서부 지중해 연안 칼라브리아 주지사, 멜로니 총리,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 이탈리아 인프라부 장관. AFP 연합뉴스
이 법안이 법률이 되려면 의회 통과 절차가 남아있지만, 멜로니가 이끄는 우파 연정이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통과가 어렵지는 않을 전망이다. 법안에는 밀수 자금을 지원하는 이에게도 같은 형량을 적용하고, 이탈리아 영해 밖에서도 밀입국 브로커를 추적할 권한을 이탈리아가 갖도록 되어있다. 이에 따라 이주민을 태운 선박의 침몰이 이탈리아 영해 바깥에서 발생해도 선박이 이탈리아 항구를 향한다면 이 법안이 적용할 수 있다.
유엔(UN) 소속 국제이주기구(IOM)는 지중해에서 난민 선박 사고로 2014년부터 목숨을 잃은 이주민이 2만여명이라고 2021년 밝혔다. 이날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와 협력해 밀입국을 단속하고 자국민에게 밀입국 위험성을 교육하는 아프리카·중동 국가들에 합법적 입국 쿼터를 설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PD) 등 이탈리아 야당은 전쟁과 박해를 피해 달아난 이들이 밀입국 브로커에 의지하지 않도록 이탈리아 우파 정부가 강력한 인도주의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번 방안은 이를 달성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제1야당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37살 엘리 슐라인은 지난 2일 난파 사고 현장을 방문해 유가족을 위로하는 등 멜로니 정부의 반이민 정책과 차별화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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