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서부 공업도시 겔젠키르헨의 정유 시설 옆 언덕에서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겔젠키르헨/AP 연합뉴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기 요금 폭등을 겪은 유럽연합(EU)이 에너지 시장 안정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4일(현지시각) 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장기 고정 요금으로 공급하는 것을 촉진할 전력 시장 개편안을 내놨고, 유럽의회는 2030년까지 에너지 효율이 낮은 비주거용 건물의 시설 개선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날 화석 연료 가격 변동에 따른 전력 시장 불안정 차단을 목표로 하는 전력시장 개편안을 발표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개편안에는 전력 도매 가격이 70% 이상 급등할 경우, 각국 정부가 전체 소비 전력 중 80%의 가격을 일시적으로 동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른 전기료 급등을 막기 위해 소비자가 전력회사에 장기 고정 요금제 공급 계약을 요구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변동 요금제와 고정 요금제 중에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며, 나중에 가격 하락분을 할인받는 결합형 계약도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회원국들에 전기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보호장치와 소비자들이 전력 공급 업체가 아닌 전력 생산 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걸 촉진할 장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집행위원회는 전력 산업의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같은 비화석연료 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는 ‘양방향 차액정산 계약’을 통해서만 공공 자금을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 방식은 재생에너지 발전 기업이 정부나 공공기관 등과 장기 공급 계약을 맺되, 손실이 발생하면 정부가 손실을 보전하고 수익이 예상보다 커지면 차액을 환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에는 도매 시장 개편 방안이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그리스 등은 가스 요금에 따라 전력 요금이 급격하게 변동하는 것을 차단할 급진적인 시장 개편을 요구해왔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집행위원회의 개편안은 27개 회원국 및 유럽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한편, 유럽의회는 이날 에너지 효율이 낮은 건물에 대해 시설 개선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 안에 따르면 에너지 효율이 가장 낮은 지(G)등급과 에프(F)등급 건물 가운데 비주거용 건물은 2030년까지 효율을 2~3등급 높은 디(D) 등급으로 올려야 하며, 주거용 건물은 2033년까지 같은 조처를 취해야 한다.
법안 발의를 주도한 아일랜드 출신의 키어런 쿠페 의원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이 중요해졌다”며 “건물 시설 개선은 에너지 수입을 낮추고 에너지 비용 부담을 줄여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에서 건물 냉난방에 드는 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40%에 달하며 난방용 에너지 대부분은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는 정부나 가계가 건물 시설 개선에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없다며 이 법안에 반대하고 나서, 유럽의회와 회원국들의 향후 협의 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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