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인근 해안에서 나무배를 타고 표류하던 난민들이 지난 24일(현지시각) ‘국경없는 의사회’의 구조선에 구조돼 휴식을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리비아가 자국민과 주변 국가에서 온 난민들을 상대로 성적 학대 등의 인권 침해를 저질러왔고 유럽연합(EU)은 이를 방조했다는 유엔 보고서가 27일(현지시각) 나왔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의뢰로 리비아 인권 실태를 조사한 인권 전문가들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리비아인들과 주변 국가에서 온 난민들에 대한 다양한 인권 침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조사를 이끈 모하메드 아우아자르 전 모로코 법무장관은 “리비아에 억류당한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광범하고 체계적임을 보여주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조사관들은 난민과 증인 등 수백명을 인터뷰하고 임의 구금, 살인, 고문, 강간, 성노예 등 각종 인권 침해를 보여주는 2800건의 정보를 수집했다.
보고서는 리비아 당국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명분으로 이주민들을 구금하고 고문과 납치, 살인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또 여성 이주민 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이나 인신매매 등의 범죄도 자행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인신 매매 조직에 납치돼 고문을 당한 선박 정비공의 증언도 소개했다. 이 정비공은 “담배불로 지지는 고문을 당했다. 그들은 내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려 했으며, 칼로 찌르는 고문 장면을 촬영한 뒤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조사단은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 수를 줄이기 위해 유럽연합이 지원하고 있는 리비아 해안 경비대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해안 경비대가 인신 매매 조직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며 취약한 이주민들에 대한 광범한 착취가 상당한 수익을 부르면서 인권 침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에 참여한 영국 런던정경대의 국제법 전문가 찰로카 베야니 교수는 “해안 경비대가 난민 단속 과정에서 시도하는 끌어내기, 밀어내기, 가로채기 등은 인권 침해를 부른다”며 유럽연합의 지원이 “범죄 행위를 돕고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다만, 유럽연합이 전쟁 범죄에 책임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대변인은 유럽연합이 해상의 난민 구조 활동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는 2011년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후 내전 상태에 빠졌으며, 현재는 서부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정부와 동부·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무장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 내전 와중에 무장 세력과 무기가 니제르 등 주변 국가로 흘러들어가면서 인근 국가에서도 분쟁이 잦아졌다. 이런 가운데 주변국에서 분쟁과 기근을 피해 리비아도 들어오는 난민도 증가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지중해를 거쳐 유럽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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