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일간 <윌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 당국이 구금한 자사 특파원을 즉각 석방하라는 성명을 냈다.
<윌스트리트저널>은 1일(현지시각) 성명에서 “우리의 유능한 저널리스트 에반 게르시코비치가 러시아에서 일하던 중 체포됐다. 어떠한 기자도 단지 일을 했다는 이유로 구금돼선 안 된다”며 “동료의 즉각 석방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매체는 “우리는 에반과 같은 용기 있는 이들의 보도로 인해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파악한다”면서 “에반의 체포는 자유로운 언론 활동에 대한 악랄한 모욕”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30일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은 <월스트리트저널> 특파원 게르시코비치를 스파이 활동 혐의로 체포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기자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첫 사례이며, 게르시코비치는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이들이 갇히는 것으로 유명한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수감됐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가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러시아 보안당국의 주장을 강력히 부인했으며, 그가 변호사와 접견할 권리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29일 오후 그가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의 한 스테이크 가게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한 텔레그램 채널에 의하면, 러시아 보안당국이 스테이크 가게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그를 두건으로 씌워 데려갔다는 주장도 나온다.
<윌스트리트저널>은 1일 누리집 메인에 “에반은 자신에게 등을 돌린 나라를 사랑했다”는 기사를 배치했다. 그가 2021년 시베리아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열정적인 취재 역량을 보여줬으며, 아무르강에 연어가 사라지는 문제 같은 환경 사안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1991년생인 그는 소련에서 태어난 유대인 망명자의 아들로 그의 가족은 미국 뉴저지주에서 살았다. 그의 부모는 1980년대 소련을 탈출했지만 그는 모스크바를 자신의 두번째 고향으로 삼아 미국에서 모스크바로 취재 영역을 넓혔다. 2014년 대학 졸업 후 <뉴욕타임즈> 뉴스 보조원으로 기자 경력을 시작한 뒤 2017년 <모스크바 타임즈>에 고용됐으며, <아에프페>(AFP) 통신을 거쳐 지난해 1월 <월스트리트저널>로 옮겼다.
동료 언론인들은 트위터에 그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존경받는 언론이었으며 그의 구금이 매우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전쟁 이후 많은 서방 언론인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한 상태이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러시아에서 기록 활동을 하던 서방 국가의 기자·작가·연구자들은 서둘러 러시아를 빠져나오고 있다. 냉전 이후 미국 언론인이 러시아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외교가와 법률 전문가들은 게르시코비치가 석방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러시아 사법부의 재판이 통상 비밀리에 진행되고, 스파이 혐의로 체포한 이들에게 대체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는 점 때문이다. 카린 장 피에르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30일 성명을 통해 “러시아 정부가 미국 시민을 겨냥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에반 게르시코비치의 구금을 가장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국무부와 러시아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해 접촉 중이라며 러시아에 체류하고 있는 자국민에게 러시아 출국을 촉구했다.
한편, 미국 <엔비시>(NBC) 방송은 31일 러시아 당국이 미국 기자를 체포한 배경에 대해 최근 러시아 스파이들이 서방 국가에서 줄줄이 붙잡힌 것을 예로 들며, 궁지에 몰린 러시아 정보당국이 미국을 상대할 협상 카드로 미국인 기자를 체포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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