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예멘 수도 사나 공항에서 후티 반군에 포로로 잡힌 가족을 기다리며 사람들이 예멘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예멘 반군과 정부군은 지난 16일 거의 900명에 이르는 포로들을 3일간 교환하며 내전 종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AFP 연합뉴스
9년째 이어진 내전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예멘에서 라마단을 마치는 축제 이틀 전에 구호물품을 지급받기 위해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최소 78명이 숨졌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20일 전날 오후 8시께 예멘 수도 사나에 위치한 한 학교에서 구호물품 배급 행사가 벌어지던 중 사람들이 넘어져 큰 인명 피해가 났다고 보도했다. 후티 반군이 현재 파악한 사망자는 최소 78명, 부상자는 최소 110명이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수백명이 몰린 상태였다. 후티 반군이 군중을 통제하기 위해 쏜 총성에 놀란 이들이 이를 피하다 잇따라 넘어졌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 두 명은 <에이피>에 “무장한 후디 반군이 공중을 향해 총을 쐈고 총알이 전선에 맞아 폭발이 일어났으며, 이를 본 군중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우르르 앞다퉈 달아나다 압사가 일어났다”고 전했다. 소셜 미디어에 공유된 영상에는 사고 현장에 수십 구의 주검이 바닥에 나뒹구는 장면이 담겼다. 일부 사람들은 얼어붙거나 비명을 질렀다.
이날 참사는 무슬림들이 이슬람 성월 라마단을 끝마치며 벌이는 축제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를 이틀 앞두고 음식을 구하려던 인파가 배급 행사장에 대거 몰리며 발생했다. 이날 압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 중엔 배급을 받기 위해 몰린 여성과 아동도 상당했다.
후티 반군의 내무부는 이번 사고가 사나 중심부에 위치한 옛 시가지에서 발생했으며 상인들이 주관하는 행사에 굶주린 수백명이 모여들면서 벌어졌다고 밝혔다. 후티 반군은 행사가 열리던 학교를 황급히 봉쇄하고 기자를 포함해 모든 이들의 접근을 금지했다. 후티 내무부는 행사 주최자 2명을 구금했으며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후티 국방부 대변인 압델 칼레크 알아그리는 지역 당국과의 조정 없이 무작위 배급을 실시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사나는 2014년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예멘 북부 거점에서 내려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예멘 정부를 축출한 뒤 장악하고 있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연합군이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면서 내전이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으로 번졌다. 이 싸움은 현재 9년째 지속되고 있다. 유엔은 지난해 말 예멘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8년간 총 37만7천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장기간 이어진 내전은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난이 되어 민생고가 심각한 상태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예멘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100만명 이상이 기아, 질병 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집계했다.
한편, 지난달 중국의 중재로 7년 만에 이란과 화해한 사우디는 이달 후티 반군과 협상을 시작하며 종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감을 높여왔다. 후티 반군과 정부군은 지난 16일 약 900명의 포로를 3일간 교환하며 내전 종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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