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벌 간 무력충돌이 엿새째 이어지고 있는 북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하르툼. AFP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의 무력분쟁이 엿새째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 민간 군사조직 바그너(와그너)그룹이 수단 신속지원군에 미사일을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수단 사태가 주변국들이 개입하는 대리전으로 확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각) 미국 <시엔엔>(CNN)은 수단 지역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의 바그너 그룹이 신속지원군에 지대공 미사일을 공급해 이들이 수단 정부군과 싸우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바그너그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군사조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시리아 내전 등에 개입하며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곳이다.
앞서 19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신속지원군과 정부군이 수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리비아와 이집트로부터 각각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면서 신속지원군 쪽에는 바그너 그룹이 개입됐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이 했는데, 이날 <시엔엔> 구체적인 정황을 보도했다.
이러한 주장은 리비아 국경 지대를 찍은 위성사진으로 뒷받침된다. 바그너그룹의 활동을 감시하는 단체 ‘올 아이스 온 와그너’(All Eyes on Wagner)는 <시엔엔>과 관련 위성 사진을 살펴본 결과,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군벌 수장 칼리파 하프타르의 기지에서 최근 바그너그룹의 이례적인 활동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하프타르가 소유하고 있으면서 와그너 그룹이 사용해온 리비아의 주요 공군기지 두 곳을 러시아 수송기 한 대가 오간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수단 사태가 발생하기 이틀 전인 지난 13일부터 시작돼 18일까지 이어졌는데, 이 시기에 러시아가 수단 북서부의 신속지원군 부대에 지대공 미사일 여러기를 전달한 것으로 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속지원군 쪽은 “러시아와 리비아로부터의 지원을 거부했다”며 <시엔엔>에 의혹을 부인했고, 하프타르와 프리고진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수단 신속지원군과 바그너그룹은 수단에 매장된 방대한 양의 금을 두고 거래하면서 2014년 이후로 관계가 깊어졌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한 뒤 서방의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프리카의 금광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단 군부 지도자들은 러시아가 동아프리카의 금광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해줬고, 그 대가로 여러 군사적, 정치적 지원을 받아왔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어지자, 러시아의 수단 금 약탈이 심화했고 그에 따라 수단에서 바그너그룹의 활동도 증가했다고 한다.
신속지원군의 지도자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사령관은 지난 수년간 러시아로부터 무기와 훈련을 지원받는 등 핵심 수혜자였고,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날에는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에 가기도 했다고 <시엔엔>은 전했다. 정부군을 이끄는 압델 파타흐 부르한 장군도 다갈로 사령관과 사이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러시아와 협력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단의 양대 군벌은 지난 15일부터 엿새째 유혈사태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중재와 압박으로 이뤘던 3차례의 휴전 합의도 깨면서 격렬히 싸우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사태로 수단에서 사망자 331명, 부상자 3180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아프리카연합, 아랍연맹 등 지도자들과 화상회의를 마친 뒤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 종료 후 이어지는 3일간의 ‘이드 알피트르’ 축제 기간 동안 휴전을 촉구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수단에서 진행 중인 분쟁을 규탄하고 시급히 적대행위 중단 촉구에 대한 의견일치가 있었다”며 “교전 지역에 갇힌 시민들이 피신해 치료받고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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