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 항구 도시 노보로시스크에 유조선이 정박해 있다. 파키스탄이 서방의 러시아 제재 상황을 이용해 러시아산 원유를 헐값에 사려고 시도하고 있다. 노보로시스크/AP 연합뉴스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파키스탄이 러시아 원유를 싼 값에 사들여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서방의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활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지만, 미국과 관계 악화 가능성이나 정유 비용 등으로 인해 의도대로 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2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이 나라가 러시아산 원유를 중동산 원유 가격보다 40% 가량 싼 배럴당 50달러 정도로 대거 수입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이 주로 수입해온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가격은 최근 배럴당 84.75달러에 거래됐다.
파키스탄은 지난달 처음 러시아에 원유 수입 주문을 넣었고, 이 물량이 곧 도착할 예정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러시아산 원유를 싼 값에 살 수 있으면 수입량을 하루 10만배럴까지 늘리려 하고 있다. 이는 파키스탄 전체 원유 수입량의 3분의 2에 달한다.
파키스탄은 대규모 기반 시설 투자에 따른 부채와 고물가로 어려움에 처한 데다가 지난해 여름 유례없는 대홍수까지 겪으며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이 때문에 러시아산 원유를 헐값에 들여올 수 있으면,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나라의 지난해 석유류 수입 규모는 187억4천만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원유 수입 가격을 배럴당 50달러까지 낮춰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또 도입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를 넘게 되면 서방의 ‘가격 상한제’ 때문에 수입이 어려워진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지난해 말 수출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를 넘은 러시아산 원유의 수송을 거부하고 해상보험 등 관련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밖에 정치적인 문제도 있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리면 미국과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마이클 쿠겔먼 남아시아연구소 소장은 “미국이 제재까지 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쿼드(4자 안보 대화) 참여국인 인도와 달리 전략적 협력의 보호막이 없다는 것은 파키스탄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원유를 정제할 정유 비용도 부담이다. 파키스탄 석유 업체 ‘엠오엘(MOL) 파키스탄’의 아프타브 자파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정유 비용으로 배럴당 2~5달러가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는 원유 대금을 중국의 위안 또는 아랍에미리트의 디르함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파키스탄이 이들 외화를 거의 보유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자파르 최고재무책임자는 이 때문에 파키스탄의 이번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타당성을 점검하기 위한 시험 구매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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