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3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 대형 요트가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가 163년 전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중국이 쓸 수 있도록 했다. 미국에 대항한 중·러의 연대가 한층 강해지는 모양새다.
홍콩 <명보> 등의 15일 보도를 보면, “바다와 접한 항구가 없어 고질적인 물류난에 시달리는 중국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이 다음달 1일부터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을 중계항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 해관총서는 지난 4일 누리집에 올린 ‘2023년 제44호 공고’에서 “지린성 국내 무역 화물의 국경 간 운송 업무 범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경유 항구’로 새로 추가한다. 동북 노후공업 기지 진흥 전략을 실현하고, 해외 항구를 이용해 국내 무역 상품의 국경 간 운송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조처는 올해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서명한 ‘2030년 중·러 경제협력 중점 방향에 관한 공동성명’에 따른 후속 조처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두 정상은 “국경 지역 잠재력을 발굴해 중국 동북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 간 교류협력을 발전시킨다”고 밝혔다.
러시아 극동 지역의 최대 항구인 블라디보스토크는 과거 청나라 영토로, ‘해삼이 많이 잡히는 마을’이라는 뜻의 해삼위로 불렸다. 1858년 청나라와의 영토 분쟁에서 승리한 뒤 1860년 베이징 조약에 따라 이 도시를 포함한 연해주 지방을 자국에 편입했다. 이후 도시 이름도 ‘동방 정복’을 뜻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바꿨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만주에서 동해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항구였다는 점에서 중국이 입은 외교·경제·심리적 타격은 막대했다. 이후 중국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은 바다가 없는 내륙이 됐고, 바다로 가기 위해서는 1000㎞가량 떨어진 랴오닝성의 항구를 이용해 ‘서해’로 진출해야 했다.
중국은 1990년대 들어선 북한 나진항을 이용해 동해로 진출하려 했다. 이 항구의 사용권을 확보하고 북한과 공동으로 개발을 추진했지만, 북한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유엔(UN)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폐쇄 등으로 최근엔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 ‘통 큰 선물’을 안겼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중국 관영 매체는 “중·러 사이의 희소식”이라면서도 과대 해석할 일이 아니라는 반응을 내놨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16일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 내 무역을 위한 환승 항구로 사용되는 유일한 외국 항구가 아니다”라며 “2007년부터 (같은 러시아 극동 지역의) 보스토치니항, 나홋카항과 함께 중국에서 ‘국내화물의 국경간 운송’ 시범 운행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우위가 확실해지며 “러시아가 중국의 속국이 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상항에서 과도하게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