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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위안부’ 할머니 목소리, 입말까지 영어로 옮겨 세계로

등록 2023-05-20 07:30수정 2023-05-20 21:11

[한겨레S] 커버스토리
위안부 피해 증언집 영문판 발간
일본군위안부 구술 증언집 영문판을 발간한 서울대 양현아 교수(왼쪽부터)와 김수아 교수, 최기자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소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일본군위안부 구술 증언집 영문판을 발간한 서울대 양현아 교수(왼쪽부터)와 김수아 교수, 최기자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소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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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길에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한 1596번째 ‘수요시위’가 열렸다. 1992년 1월에 시작해 31년째다. 이날 집회에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아이들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넘어, 소수자 차별과 억압, 폭력에 반대한다”는 연대 발언을 이어갔다. ‘바위처럼’ ‘노래만큼 좋은 세상’ 같은 노래도 합창했다. 인도 첸나이의 마드라스 크리스천 칼리지 대학생들도 이날 시위 현장을 찾았다. “한국의 역사와 민주주의를 배우기 위해” 열엿새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참이었다. 인도 청년들은 전날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데 이어, 이날 수요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했다.

같은 시각, 건너편 도로에선 우파 단체 회원들이 “위안부는 사기다!”,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윤미향을 구속하라” 같은 구호를 외치며 방해 시위를 했다. 펼침막에는 “반미/반일 선동은 북괴의 지령이다”, “위안부란 매춘행위를 하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 같은 거친 주장들이 난무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의 회복은커녕 엄연한 역사적 사실조차 부인하는 세력이 목소리를 키우는 현실은 과거사 문제의 올바른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 그런 만큼 더 중요하고 절실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제1596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려 집회에 참석한 서울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제1596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려 집회에 참석한 서울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00년 증언집 발간 뒤 2018년 미국 연구자들과 의기투합

이런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술 증언집 영문판이 최근 출간됐다. 영국의 글로벌 학술 전문 출판사가 낸 영역본의 제목은 ‘Voices of the Korean Comfort Women’(한국인 위안부들의 목소리)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사회학)가 이끈 연구팀이 쓴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풀빛 펴냄)의 2011년 개정판을 원본으로 삼았다. 양 교수는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하 2000년 국제법정)의 한국위원회 산하 증언팀을 이끌면서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의 구술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한겨레>는 지난 17일 수요집회 취재 뒤 서울대에서 양현아 교수를 만나 영문판 출간의 과정과 의미, 위안부 문제의 현실과 과제 등 폭넓은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에는 2000년 국제법정 당시 양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로 증언팀에서 활동한 최기자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소장과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도 함께했다.

양 교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할머니들의 증언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오래전부터 영문 번역을 계획했는데 많이 늦어졌다”며 영문판 출간 계기를 ‘줄탁동시’(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어미 닭과 병아리가 각각 밖과 안에서 서로 껍질을 쪼아 돕는 것)에 비유했다.

“2000년 국제법정 이후, 특히 2010년대 들어 위안부 피해 증언의 기록과 영문 번역의 중요성이 커졌어요. 국내 여러 학자와 정의기억연대 등 관련 단체에서 재촉성 격려가 이어졌지만 여러 일정과 이유로 선뜻 나서지 못했죠. 할머니들의 입말에는 한국인조차 알아듣기 어려운 방언이나 토속어가 많아요. 그걸 영어로 표현할 분은 위안부 문제와 현안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서 우리말과 영어를 모두 아주 탁월하게 잘하시는 분이어야 했는데 적임자를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2018년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I)의 최정무 교수(동아시아학)가 한국의 젠더 문제 연구와 관련된 문의를 해왔다고 했다. “최 선생님처럼 두 언어에 능통한 좋은 한국학자를 놓치면 안 되겠다, 함께 작업하면 굉장히 좋은 번역본이 나오겠다 싶었죠.”(웃음)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 &lt;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gt;(2011)와 영문 번역본 .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2011)와 영문 번역본 .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태평양 사이에 두고 번역·감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번역팀과 리뷰(감수)팀이 꾸려졌다. 미국 쪽 번역팀에는 최정무 교수를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학, 한국 문학과 대중문화, 일본 문학, 미디어, 젠더·여성학 등 다양한 전공 분야의 젊은 연구자까지 7명이 참여했다. 리뷰팀에는 한국 쪽 양현아 교수 등 3명과 미국에서 김경현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한국학)와 영화 전문가 주리 리(재미동포 2세)가 합류했다.

한국 쪽 리뷰팀은 2000년 국제법정 증언팀에서도 함께했던 까닭에 “할머니들의 증언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했다. 그러나 번역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구조 차이가 큰데다, 할머니들의 구술은 단어의 생략, 시간과 공간을 수시로 넘나드는 기억, 사실 확인이 필요한 대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입말은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도 수두룩하다. ‘텍스트’(문자)가 아닌 ‘콘텍스트’(맥락)를 이해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구술에서 생략된 낱말은 대괄호 안에, 몸짓과 표정 묘사나 간단한 해설은 소괄호 안에 삽입하고, 자세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대목은 일일이 주석을 달았다. 양 교수는 당시 고민을 이렇게 회고했다.

“저희가 증언집(한국어판)을 만들 때 가장 큰 유혹은 독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문장을 윤문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술을 매끄러운 문장들로 고치면 증언자의 언어가 아니라 저희(증언팀)의 언어가 돼버리죠. 저희는 독자들에게 피해 생존자의 언어를 연결해드리고 싶었어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의 육체성, 어떤 정서, 언어와 인지까지 전해주는 매개자, 브리지(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최소한의 개입’ 원칙이라고 할까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제2전시실에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제2전시실에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국과 미국의 시차도 힘들었다.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어요. 밤낮이 정반대 시간이잖아요. 미국에서 번역 텍스트가 오면 서울에선 리뷰팀 3명이 한밤중에도 동시에 ‘구글 독스’를 열어놓고 휴대폰 문자로 검토 의견을 주고받았죠. 번역문 초고를 저희 리뷰팀이 즉각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게 맞는 표현인지를 한국에서 먼저 검토하고, 다시 미국 쪽 리뷰팀과 전체 리뷰도 했어요.”

2019년에는 미국(6월)과 서울(8월)에서 번갈아가며 양쪽이 참여한 워크숍도 열었다. 번역 문장과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최기자 소장은 “한국어는 단어가 생략돼도 맥락으로 알 수 있는데 영어 문장은 주어와 시제를 명확히 표기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할머니는 ‘군인들이 나래비(줄)를 섰어. 성병 검사를 받았어’ 이렇게만 구술했는데, 미국 쪽 번역팀에서는 ‘그들이 성병 검사를 받기 위해서 줄을 섰다’는 식으로 번역한 거예요. 이때 성병 검사를 받은 주어가 ‘그들’(They)인지, 증언 당사자 할머니가 포함되니까 ‘나’(I)’ 또는 ‘우리’(We)라고 해야 하는지도 논쟁거리였죠. 미국 쪽 젊은 번역자들이 전체 상황이나 맥락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보니 번역문 초안에도 편차가 있었죠.”

방언과 토속어, 우리말 고유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정확한 뜻으로 옮기는 건 더 큰 장벽이었다. “할머니들이 쌀을 사는 걸 ‘쌀 팔아온다’고 말하는데, 미국 쪽 젊은 번역자들은 문자 그대로 ‘할머니들이 쌀을 판매한 것처럼 ‘sell’로 옮긴 경우도 있다”는 전언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일화였다. “전라도 출신 할머니가 어떤 장소를 ‘해사무리’라고 말한 것은 전라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어 그냥 포기하고 썼어요. 그런데 번역팀 초고에선 그걸 ‘해산물’(seafood)이라고 번역한 거예요.”(좌중 웃음)

000년 12월 8일 일본 도쿄 구단회관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박영심 할머니(증인석 맨 오른쪽)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박 할머니는 1945년 일본군 위안소에서 구출될 당시 만삭의 배를 잡고 있는 모습으로 사진에 찍혀 위안부의 수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도쿄/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000년 12월 8일 일본 도쿄 구단회관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박영심 할머니(증인석 맨 오른쪽)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박 할머니는 1945년 일본군 위안소에서 구출될 당시 만삭의 배를 잡고 있는 모습으로 사진에 찍혀 위안부의 수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도쿄/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구술성·가독성에 중점…증언의 세대 계승

증언을 직접 채록한 리뷰팀은 영어 번역의 원칙으로 두가지를 꼽았다.

“구술성을 최대한 살리려 했습니다. 이전까지의 번역물과 가장 큰 차이점이죠.”(최 소장)

“다른 하나는 가독성! 한국말로도 쉽지 않은 문장을 영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양 교수)

최 소장은 “할머니들 이야기의 진정성을 파악하고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번역을 하려다 보니 번역할 수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양 교수는 “영어 사용자들 사이에도 ‘그렇게 하면 그건 영어가 아니에요. 못 알아들어요’라는 분도 계셨고, ‘아니, 왜 몰라? 그 정도면 다 알아들어요’라는 분도 계시고 편차가 있더라. 최대한의 합의점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로컬’에서 생산한 지식을 ‘글로벌’ 독자에게,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전파할 때 감당해야 하는 과제가 이런 거구나, 느꼈죠.”(양 교수)

번역팀과 리뷰팀 각각의 전문성과 특장점을 극대화한 긴밀한 소통은 우리말 특유의 언어 감각까지 되살린 영어 문장들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그런디 [고자 영감은 ] 어디 갔다가 틸릉틸릉틸릉 와서는, (…) 아이구, 지그 어매가 죽어 논게롱”(최갑순)이라는 말은 “But then [this impotent old man] went somewhere else and came trot-trot-trotting back, (…) aigoo~ now that his mom was dead and gone”으로 번역됐다.

양 교수는 “번역팀과 리뷰팀의 관계가 업무 분장뿐 아니라 ‘증언의 세대 계승’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평가했다.

“2000년 국제법정 당시 제가 이끌었던 한국의 증언팀이 20대 대학원생들이었어요. 다시 20년이 지나서 이번 미국 쪽 번역팀 참가자들도 현재 박사 과정이거나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세대거든요. 한국·중국·일본·미국까지 혈통과 문화적 배경도 다양합니다. 그런 분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과 전문성을 갖게 돼 앞으로도 계속 연구와 교류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 영문판 발간 작업의 리뷰팀. 왼쪽부터 차례로,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회학), 최기자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소장,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여성학 협동과정). 이정용 선임기자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 영문판 발간 작업의 리뷰팀. 왼쪽부터 차례로,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회학), 최기자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소장,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여성학 협동과정). 이정용 선임기자

“진실 알리는 기록으로 연대 확산”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삼각동맹 구도 속에서 한-일 관계를 몰역사적, 반인권적 방향으로 급변침하는 현실은 식민지 과거사 해결과 정의 회복, 피해자 치유에 큰 걸림돌이다. 양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제3자 변제’라는 셀프 배상으로 일본의 책임을 면제해주고 구상권 청구도 하지 않겠다면서도 피해자들과 제대로 된 대화와 소통도 없었던 것은 국제규범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 관계를 위해서 정의에 눈감고 기층 민중들의 고통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구나라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모두 90살을 훌쩍 넘긴 초고령자들이다. 지난 2일 피해자 중 또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9명으로 줄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극우세력조차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딴죽을 건다. 올바른 기억과 기록, 후대 교육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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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아 교수는 “학부 수업에서 위안부 주제를 다루면 대학생들도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위안부 이슈의 주된 논점이 ‘강제동원이 있었나 없었나’에 맞춰지다 보니 학생들도 그것만 궁금해하고 증언집을 읽는 건 힘들어하죠. 일본군위안부연구회(연구자와 활동가 모임)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 이슈를 ‘포스트 식민주의’ 관점에서 교육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양 교수는 “현재로선 일본과 협상을 잘해서 과거사 문제를 풀어가는 건 난망하다. 일본 정부에 기대할 게 별로 없다”고 했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의 역할과 연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유엔이나 국제 인권기구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한국의 위상과 포지션을 늘려나가야죠. 또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갖는 게 중요합니다. 법학이든 문학이든 기록물이든,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과 담론을 생산하고 연대를 확산할 수밖에 없어요. 저희는 앞으로도 전시 성폭력과 인권을 논의하는 자리가 더 많아질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런 희망이 있으니까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무엇이 정의 회복을 방해하나?” 미국 교사들이 만든 ‘그룹토론 질문’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I)의 영문 번역팀은 위안부 문제의 입체적인 이해와 공공 교육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9년 한해에만 ‘전쟁과 여성 인권’ 국제 콘퍼런스, 위안부 관련 문서와 사진 전시회,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과정을 담은 영화 <허스토리>(Her Story, 2018)의 미국 시사회 등이 잇따랐다.

유시아이 번역팀은 번역 원고의 편집·수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영어권 대중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2020년 11월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 역사 교사들과 이틀간 진행한 워크숍은 “교사와 연구자 모두에게 강의실에서 위안부 역사를 가장 잘 가르치는 방법을 함께 탐구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영문판 ‘감사의 말’ 중에서) 캘리포니아주 교육당국이 2019년부터 공립학교 10학년(한국 고교 1학년)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서술해 교육하는 것을 활용한 윈윈 프로그램이었다.

워크숍은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 한국학센터와 서울대 인권센터 위안부 연구팀의 협력으로 진행됐다. 앞서 2018년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위안부 사진과 문서 자료들을 발굴해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1,2권(푸른역사)을 출간한 바 있다. ▶관련기사= “위안부 피해 증언은 인간 용기의 최대치” (한겨레 2018년 3월 30일 ‘책과 생각’ 커버스토리)

워크숍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짠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고 참가자들이 배역을 맡아 시연까지 했다. 특히 워크숍에 참여한 미국 교사들이 그룹토론 수업용 질문들을 정리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로 주목할 만하다. 일본군 위안부 과거사의 끔찍한 진실, 나아가 전시 성폭력 범죄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질문들을 잘 정리하고 있어서다. 미국 청소년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세계 시민 교육에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 미국 역사 교사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그룹토론 가이드

1. 위안부는 누구인가? 위안부 시스템은 어떻게 고안됐나?

2. 위안부들은 어떻게 동원돼 어디로 끌려갔나? 그들은 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중 어떤 일을 겪었나?

3.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로 보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4. 정부와 사회가 과거 잘못을 바로잡고 위안부 같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경험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5. 유엔은 1948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했고, 1993년에는 여성 폭력 철폐 선언을 발표했다. 현세대는 어떻게 하면 이 선언들이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전세계의 잠재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잘 이행되도록 할 수 있을까 ?

6.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 요구는 충족되고 있나? 그렇지 않다면, 방해되는 원인은?

7. 위안부 피해자들은 사기와 속임수로 끌려갔는데도 왜 자신의 과거를 수치스럽게 느끼는가? 가부장제, 식민주의, 전쟁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치심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가?

8. 일본군이 위안소를 면허받은 공창으로 설립·운영하는 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은 금전적 보상을 받았는가? 어떤 방식으로?

9.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 경험을 기억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50여년이 지난 과거 기억은 믿을 만한가? 피해자들의 진술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어떤 증거가 필요한가?

10. 한 증언자는 혼자 있을 때는 위안부 경험이 기억나는데 남에게 말하려 하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적 압박과 추측이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11. 종전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면한 고난과 도전들은 무엇인가? 어떻게 견디며 살았나?

12. 피해자들이 귀국한 이후 위안부 경험이 얼마나 오랫동안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쳤는가? 세대를 넘어 지속한 트라우마가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13. 피해자들은 위안소에서 마음을 빼앗긴 일본 군인들을 어떻게 봤나? 위안소에서 출생한 자녀들은 모친의 과거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가?

14.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왔는가?

15. 한국 정부는 증언과 행동에 나선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있는가?

16. 위안부 문제가 수십년째 공론화되고 있는데도 일부 피해자들이 증언이나 행동을 꺼리는 이유는?

17. 위안부 운영은 일제의 군대와 식민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일본은 전쟁 지역 성매매 시설 설립을 어떻게 정당화했는가?

18.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일본 국민의 대응은?

19.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어떤 일을 겪었나? 그 경험들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유럽의 경험과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른가? 승전 연합군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 낳은 부정적 결과를 어떻게 처리했나?

20.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현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전시 성폭력은 어떻게 지속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가?

21. 위안부 피해자들은 정의를 위해 어떻게 싸웠거나 싸우고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그 투쟁의 결과는 어떤 상태인가? 피해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변화의 주체가 되었나?

22. 위안부 피해자들의 운동이 한국 사회를 넘어 국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것이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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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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