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붕괴로 침수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에서 8일(현지시간) 주민들이 보트를 타고 대피하고 있다. 지난 6일 새벽 높이 30m, 길이 3.2㎞의 카호우카 댐이 폭발과 함께 붕괴해 지금까지 최소 5명이 사망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난 5~6일에 일어난 노바 카호우카 댐 파괴를 놓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대편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소행을 입증한다는 감청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감청 내용이 불명확하고 입증할 수 없는 데다, 미국은 누구의 소행인지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보안국(SBU)은 9일 러시아의 사보타주 단체가 카호우카 댐을 폭파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전화통화를 감청했다며, 그 내용을 텔레그램 계정에 올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1분30초 분량의 이 음성파일에 러시아어로 대화하는 두 사람은 러시아 병사이고, 카호우카 댐 파괴와 그로 인한 재난을 두고 통화를 나누는 내용이라고 우크라이나보안국은 주장했다.
음성파일에서는 한 남성이 “그들(우크라이나인)이 그것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사보타주 그룹이다”며 “그들이 댐으로 (사람들을) 겁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그들이 계획했던 것 이상을 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또 그 결과로 하류의 ‘사파리 공원’에서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죽었다고 말했다. 이에 다른 남성은 러시아군이 댐을 파괴했다는 주장에 놀라움을 표했다.
우크라이나보안국은 이 통화를 한 사람들의 신원이나 더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보안국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보안국의 감청은 카호우카 댐이 점령자들의 사보타주로 폭파됐음을 확인한다”며 “침략자들은 댐을 폭파해 우크라이나에 공갈하고 우리나라 남부에 인공적인 재앙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 감청과 그 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댐 파괴가 어느 쪽의 소행인지에 대해 단정하지 않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8일 정례 브리핑에서 댐 파괴에 대해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계속 평가 중”이라며 국방부는 댐 파괴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라이더 대변인은 “나는 가설이나 추측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이런 상황에 있는 이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당연히 자신들을 지킬 권리를 갖고 있고, 우리는 그들을 지키는 데 지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 정책조정관도 6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댐 폭발에 러시아 책임이 있다는 보도를 평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며 “현재로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쪽은 카호우카 댐은 사력댐이어서 외부 공격이 아니라 내부에 폭탄 장착으로 파괴됐다며, 댐을 점령했던 러시아의 의도적인 파괴 공작으로 댐이 붕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 쪽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인 크림반도의 수원지를 차단하고, 반격 공세의 실패를 가리기 위해 댐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사보타주 공작을 벌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헤르손을 방문해 침수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올렉산드르 프로쿠딘 헤르손 주지사는 약 2천명의 민간인이 침수 지역에서 소개됐다며 피해 상황을 집계했다. 그는 헤르손 지역에서 침수 지역의 68%는 드니프로 강 동안의 러시아 점령지라며, 러시아 쪽 피해도 크다고 인정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