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곡물수출 끊길라…유럽, 러 농업은행 제재 완화 검토

농업은행 자회사 통한 국제 자금결제 허용 논의
러시아, “곡물협정 지속할 상황 변화 없다” 경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흑해 곡물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 항구에서 곡물을 싣고 흑해를 빠져나가기 위해 대기 중인 선박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17일로 종료될 위기에 처한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을 살리기 위해 러시아 농업은행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할 움직임에 나섰다. 러시아는 여전히 큰 상황 변화가 없다며 협정 종료 가능성을 거듭 경고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3일(현지시각)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이 지난주 열린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농업은행이 자회사를 통해 국제 자금 결제망과 연결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서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제재를 위해 러시아 주요 은행의 국제 결제망 연결을 차단했는데, 러시아는 지난해 7월 곡물 협정을 맺으면서 자국 농업은행의 국제 결제망 재연결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검토하는 방안은 러시아 농업은행이 직접 결제망에 연결하는 대신 자회사를 통해 곡물 수출 관련 자금 결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 방안은 러시아가 협정을 파기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데 필요한 ‘가장 덜 나쁜 방안’으로 제시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유럽연합 관리들은 그동안 러시아가 곡물 협정 연장 시기마다 협정 파기를 경고했지만,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파기를 경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이 전면 중단됐다. 그러자 이에 따른 국제 곡물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유엔와 튀르키예(터키)가 중재에 나서 지난해 7월22일 곡물 협정을 성사시켰다. 이 협정은 지난해 11월17일, 지난 3월18일, 지난 5월18일 모두 3번 연장됐다.

러시아는 협정을 연장할 때마다 유엔과 자국이 합의한 5개 사항 이행을 요구해왔으나, 서방은 응하지 않고 있다. 5개 사항은 러시아 농업은행의 국제 결제망 재연결 외에 △러시아에 대한 농업 기계과 부품 공급 재개 △보험 및 재보험 관련 제재 해제 △러시아산 비료 수출을 위한 암모니아 수송관의 우크라이나 구간 재개통 △러시아 농업·비료 관련 기업들의 해외 자산 동결 해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에 아직 상황 변화가 없으며 협정 연장 가능성의 희망도 크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기구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겐나디 가틸로프 특사도 이날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그동안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협정을 계속 연장해왔지만, 현재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현상 유지에 동의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한다”며 협정 파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신기섭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