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연금제도 개편 반대 시위 참가자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발로 차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 의회가 5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 혐의자의 정보 기기를 추적할 수 있게 하는 법률안을 통과시키면서 인권 침해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 하원은 18일(현지시각) 중요 범죄 혐의자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이동전화 등 정보기기를 추적하고 정보기기에 달린 카메라와 마이크를 원격 감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찬성 388, 반대 111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 법안은 테러, 조직 범죄 등 5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한 사건 수사를 위해서는 법원의 허락을 받아 수사 대상자의 정보기기를 추적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경찰의 추적은 6개월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언론인·법조인·의원 등은 추적 대상에서 제외됐다.
상원은 지난 5월 관련 법률안을 이미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상하원 공동 특별 위원회의 법안 조정 작업을 거쳐 시행에 들어갈 전망이다.
연금제도 개편 반대 시위가 격렬하던 지난 봄, 프랑스 정부는 범죄 혐의자의 차량이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방식으로는 범죄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이 법안을 마련했다. 우파 정당들은 이를 적극 옹호했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 소속의 파스칼 보르데 의원은 “우리가 진정 조직 범죄에 맞서 싸우려면, 범죄 집단이 쓰는 수단을 수사관들에게도 똑같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 정치인들과 인권 단체들은 경찰의 권한 강화와 인권 침해를 우려했다. 사회당의 세실 욍테르마이에 의원은 이런 감시 활동을 ‘자유 파괴’로 규정하면서 “이런 방식은 무시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디지털 권리 운동 단체 소속의 바스티앵 르케레크 변호사는 “프랑스에서는 이미 많은 남용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법안에는 남용 방지 장치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4월에도 프랑스 의회는 2024년 파리 하계올림픽 기간 동안 인공지능 기술과 드론을 동원해 공공 장소 등을 감시하는 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또, 5월에는 프랑스 정부가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추진되는 ‘유럽 언론 자유법’(EMFA)에서 언론인이 사용하는 정보기기에 대한 감시 소프트웨어 사용 금지 규정을 빼는 데 앞장선 바 있다.
르케르크 변호사는 “프랑스가 모두를 감시하는 안보 전략의 선도자가 되고 있다”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 앰네스티의 프랑스 지부 소속 카티아 루 인권보호 담당관도 “감시 기술 사용은 안보 문제에 대한 체계적 대응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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