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법개편안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에서 시민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을 피하며 생존을 위해 애쓰는 동안 그들은 ‘사적인 작은 민주주의’를 지키기에 바쁘다.”(30살 아랍계 이스라엘인 마하미드)
수십만명의 이스라엘 시민들이 극우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가 추진하는 사법 개편안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를 7개월째 계속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계 시민들은 시위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5분의1 가량을 차지하는 200만명의 아랍인들은 유대인 중심의 ‘그들만의 시위’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31일 전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30주 이상 지속된 반정부 시위 현장엔 대다수 참가자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유대인의 영혼을 상징하는 국가 ‘하티크바’(Hatikva)를 부르는데, 유대인이 아닌 아랍계 시민들은 이같은 상황에 불편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시위대가 외치는 민주주의 구호엔 이스라엘에 의해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이스라엘의 인구 구성은 유대인 74%, 아랍인 21%, 기타 5%가량이다.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시위 불참은 유대인들이 세운 국가에 대한 반감 때문이며,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에 대해 보이콧해온 오랜 관행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이번 반정부 시위 역시 아랍인들이 모여사는 도시의 높은 빈곤율과 범죄, 실업 등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행정부가 더 많은 권한을 갖도록 하는 네타냐후 극우 연정의 사법개편안은 이스라엘에서 소수자인 아랍인 커뮤니티에 가장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랍 시민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법안에 길을 터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초민족주의와 종교적 보수 정당으로 구성된 네타냐후 연정은 아랍인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법안의 통과를 논의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현재 대법원이라면 이러한 법안이 발효되지 못하도록 막을 가능성이 크지만, 사법 개편으로 인해 대법원의 권한이 제한되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 대법원은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안 일부를 무효화한 전례가 있다. 지난 2000년 대법원은 국유지에 건설된 유대인 공동체에 아랍인의 이주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또한, 대법원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점령지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법안도 무효화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통합을 강조하는 이스라엘의 좌파 정당 하다쉬의 대표 아이만 오데는 이달 초 엑스(트위터)에 “정당한 비판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공간이 더 제한되면 우리 아랍인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아랍계 시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촉구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1일 점령지 서안지구에 위치한 이스라엘 정착지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인을 붙잡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이스라엘 점령에 분노한 팔레스타인 20살 청년이 이스라엘이 점령한 서안지구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의 한 쇼핑센터에서 총격을 가해 최소 6명이 다쳤다. 용의자는 이스라엘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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