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한·미·일 정상회의를 하려고 로렐 로지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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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이 사실상 ‘3각 군사동맹’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을 내놓으며, 한국전쟁 이후 70여년 동안 이어져온 한국의 안보 인식에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세 나라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계속해 증진해나가겠다”고 선언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도발·위협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신속히 협의할 것을 공약한다”고 밝혔다. 세 정상이 언급한 ‘지역적 도전’ 등이란 이 지역에서 세 나라가 직면한 주요 안보 위협인 한반도·동중국해(대만·센카쿠)·남중국해 사태를 이르는 것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한국군은 현재의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국을 방어하는 것’에서 중장기적으로 ‘인·태 지역의 여러 위협에 대응하는 것’으로 활동 범위와 역할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세 나라는 이 같은 위협에 ‘협의’는 물론 향후엔 ‘공동 대응’까지 가능하도록 “다영역에서 3자 훈련을 연 단위로 정례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단기적으로는 두가지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한반도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의 ‘입김’이 커지게 됐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1999년 만들어진 주변사태법(2016년 중요영향사태법으로 개정 시행)에 따라 한반도 방위를 위해 증강되는 미군을 후방지원(병참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 경우 한-일 간의 군사적 소통은 미국을 경유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3개국의 협의 틀을 통해 일본이 한국에 다양한 요구사항을 ‘직접’ 쏟아낼 수 있게 됐다. 자국민 구출을 위해 자위대의 한국 영토 진입을 허용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고, 적기지 공격 능력을 활용해 북한을 직접 타격하는 과정에서 밀접한 의견 조율도 가능해졌다. 나아가, 미·일은 자위대의 후방지원 부대가 좀 더 원활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동해 공해상’ 등이 아닌 한국 영토 내에서 작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게 됐다. 물론, 일본의 군사적 개입 정도가 강해지면서, 한반도 유사사태가 발생할 때 한·미·일의 더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두번째 변화는 한국이 한반도 안보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보기 힘든 동중국해·남중국해 사태에 연루될 가능성이 극적으로 커지게 됐다는 점이다. 관심의 초점은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으로 떠오른 대만이다. 미국은 대만을 방어할 조약상의 의무는 없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네번에 걸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방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수수방관하다간 전후 70여년 동안 이어진 서태평양 내 미국의 패권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대만 유사사태를 일본 유사사태로 보고 자위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주요 인사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인식을 거듭 밝힌 바 있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지난 4월 중의원에서 미국이 대만 방어를 위해 자위대 파견을 요청해올 경우 “헌법, 국제법, 국내법에 따라 개별·구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에서 내놓는 각종 ‘전쟁 시뮬레이션’을 보면, 미·일이 최선을 다해 참전한다는 전제 아래 미-일 동맹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낼 것이란 결론을 내놓고 있다. 일본은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안보 관련 3개 문서를 개정하고 방위예산(국방비)을 5년 내에 국내총생산(GDP)의 2%대로 올리기로 결단한 상태다.
이런 살벌한 정세 속에서 대만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미·일은 3자 협의 틀을 통해 한국에 ‘조율된 대응’을 요구해올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차출을 통보하는 것은 물론 일본과 함께 인·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국도 직접 ‘군사적 기여’를 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한국이 이런 요구에 응해야 할 조약상 의무는 없지만, 거부할 경우 미국과 동맹 관계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1일 한국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이 합의를 통해 한국이 중국에 대한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라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고 짚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