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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월드컵 우승 그 후…챔피언 스페인의 ‘미투’ 투쟁이 시작되다

등록 2023-08-30 08:00수정 2023-08-30 08:26

‘강제 키스’ 루비알레스 회장 사퇴 거부 후폭풍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RFEF) 회장이 지난 25일(현지시각) 스페인 라스로사스에서 열린 협회 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라스로사스/AP 연합뉴스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RFEF) 회장이 지난 25일(현지시각) 스페인 라스로사스에서 열린 협회 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라스로사스/AP 연합뉴스

#SeAcabó(세 아카보)

이 해시태그 속 문구는 스페인어로 “이제 끝이다”라는 뜻을 갖는다. 지난 25일(현지시각) 스페인 여자 축구대표팀의 미드필더 알렉시아 푸테야스가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이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제 끝이다. 헤니페르 에르모소, 너와 함께하겠다”라고 적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엑스에 이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스페인 곳곳에 운집한 시위대의 모습과 그간 여자 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자행돼 온 남성 지도자들의 불쾌한 행동을 고발하는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세 아카보’는 투쟁과 연대의 구호다.

스페인이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챔피언에 오른 뒤 더 거대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일 월드컵 우승 시상대에서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RFEF) 회장이 스페인 여자 축구대표팀 공격수 헤니페르 에르모소(파추카)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전세계에 생중계됐고, 이는 ‘동의 없는 키스’에 대한 성추행 논란으로, 나아가 스페인 사회와 축구계에 만연한 남성 중심적 ‘마초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발로 번졌다.

화를 키운 건 루비알레스 회장의 25일 연설이다. 사건 하루 만에 사과문을 올린 뒤 ‘곧 사임할 것’으로 여겨졌던 그는 이날 협회 회의장에서 “사퇴하지 않겠다”는 말을 다섯 번 반복하며 싸움 의지를 밝혔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당시 에르모소에게 키스해도 되겠느냐는 허락을 구했고 그도 ‘좋다’고 동의했다고 주장하며 “스페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경영자인 제가 물러나야 할 정도로 이 사건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되물었다.

스페인 시민들이 28일 마드리드 시내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스페인 시민들이 28일 마드리드 시내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연설 직후, 당사자인 에르모소는 성명을 통해 “루비알레스가 언급한 대화는 전혀 없었고, 그의 키스는 합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에르모소와 이번 월드컵 대표팀 23명을 포함한 81명의 스페인 선수들이 루비알레스 회장이 물러날 때까지 대표팀 소집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저녁에는 마드리드에 수백 명의 시민이 모여 “그것은 키스가 아니라 침략이다”라고 외쳤다.

이튿날에는 루비알레스 회장의 측근으로 여자 대표팀을 이끌어온 호르헤 빌다 감독이 비판 성명을 내며 등을 돌렸고, 코치진도 항의 의사를 표하며 집단 사임했다. 지난 24일 루비알레스 회장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던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날 그의 활동 자격을 징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정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27일에는 협회 내부에서 자체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28일에는 스페인 검찰이 예비 조사를 개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급기야 28일 스페인축구협회를 구성하는 각 지역 회장들이 모여 장시간 회의 끝에 “루비알레스에게 협회 회장직을 즉시 사임할 것을 요청한다”라는 요구를 담은 공동 성명을 냈다. 사건 발생 후 약 8일 만에 루비알레스 회장은 대부분의 지지를 잃고 사면초가에 빠졌다. 남은 지지자는 고향 땅의 교회에 칩거해 단식 투쟁에 들어간 그의 어머니 정도다. 그는 “아들을 향한 비인간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사냥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세비야 선수들이 지난 26일 ‘세 아카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세비야/EPA 연합뉴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세비야 선수들이 지난 26일 ‘세 아카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세비야/EPA 연합뉴스

연대의 물결은 크게 넘실댄다. 프리메라리가의 남자 프로축구팀 세비야 선수들은 지난 26일 지로나와 안방 경기에서 ‘세 아카보’가 적힌 티셔츠 차림으로 입장했고,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등 대부분의 거대 클럽이 에르모소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빅토르 프랑코스 스페인 체육부 장관은 “지금이 스페인 축구의 ‘미투의 순간’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스페인 ‘엘파이스’는 “이제 끝이다”의 의미를 이렇게 부연했다.

“스페인은 더 이상 ‘루비알레스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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