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통 위로 유가 상승 곡선을 그린 그림. 로이터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석유 감산 공조로 석유 값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배럴당 90달러를 넘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연말까지 원유 감산을 연장한다고 밝혔고, 미국은 동맹국인 사우디가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5일(현지시각) 브렌트유 선물은 전거래일보다 1.2% 오른 배럴당 90.04달러로 거래돼,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 배럴당 90달러선을 돌파했다.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산 선물도 전거래일보다 1.3% 86.69달러에 거래돼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 상승은 이날 사우디와 러시아가 잇따라 감산을 연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한 여파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이날 성명을 내어 지난 7월 시작한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 정책을 12월까지 3개월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영 통신인 ‘사우디 프레스 에이전시’는 이날 에너지부 관리를 인용해 감산 조처와 관련해 시장을 주시하면서 필요하다면 추가적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노박 부총리도 이날 하루 30만배럴 감산을 올해 말까지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고 국영 타스 통신이 전했다.
양국은 “추가적인 자발적 감산은 석유 시장의 안정과 균형을 지지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와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산유국 모임인 오펙플러스 회원국들은 지난해 일련의 감산을 통해 석유 값 부양을 노렸으나, 중국에서 수요 약화와 전 세계적인 통화 긴축 정책 탓에 지난해 여름부터 국제 유가는 하락 추세였다. 그런데 최근 국제 여행 수요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회복되는 등의 영향으로 석유 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의 석유 감산 연장은 석유값 앙등에 대한 우려를 부르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미국은 러시아와 사우디의 감산 공조에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사우디의 감산 연장 발표 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석유 주입기 앞에 있는 소비자들을 위해서 석유 값을 내릴 수 있는 그의 도구 내에서 모든 것을 하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설리반 보좌관은 오는 9~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과 회담을 할 계획은 없으며, 사우디의 감산 연장 발표로 계획이 바뀌지도 않는다고 확인했다.
사우디의 이번 감산 연장 조처는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다시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몇달 동안 사우디에 유화적 조처를 취하며,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를 지원해 양국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려 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승인의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 등 핵개발 지원을 미국에 압박하고 있다. 사우디는 또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외교 관계를 전격적으로 정상화해, 미국의 대이란 압박에 구멍을 내며 중동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발판을 깔아주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석유 감산 공조로 인한 석유 값 상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제재를 회피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비 조달을 막으려고 러시아가 수출하는 석유에 대한 상한가격을 적용하고 있으나, 석유 값이 오르면 효과는 약화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