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북부 루프민의 가스 분배 시설. 러시아산 가스에 크게 의존하던 독일 제조업이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이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루프민/AFP 연합뉴스
유럽연합(EU)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이 올해 ‘역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2위 경제국인 프랑스의 상대적으로 견조한 성장세가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던 제조업·수출 중심의 독일 경제가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유럽연합을 이끄는 두 나라의 경제가 다른 길에 접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올해 독일의 성장률을 -0.4%로 전망하면서 독일의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12일 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봄에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독일의 올해 성장률을 0.2%로 예상했으나, 전날 새로 발표한 전망치에서는 성장률을 0.6%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파올로 젠틸로니 유럽연합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독일의 성장률 전망을 낮추면서, 올 상반기 예상을 크게 밑돈 성장세, 실질임금 감소에 따른 소비 위축, 기대에 못 미치는 수출 등을 배경으로 꼽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성장률은 지난봄 0.7%에서 1.0%로 상향 조정됐다. 두 나라 경제의 대조적인 상황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불러온 여러 경제적 충격과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경기 회복세의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진 두 나라 경제가 이에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화학·자동차 등 제조업이 생산과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러시아산 값싼 가스 공급이 줄면서 에너지 비용 증가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초까지 발트해 해저에 설치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등을 통해 전체 가스 수요의 55% 정도를 러시아에서 수입해왔다. 그러나 러시아가 지난해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가스를 무기화하면서 8월부터는 이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이 멈춰버렸다. 이에 한발 더 나아가 9월 말 이 가스관의 일부 구간이 폭발로 파괴되면서 재가동도 불가능해졌다. 전기차 보급 확대 추세에 따른 독일 자동차업계의 어려움 가중도 경제에 주름살을 더하고 있다. 프랑스 싱크탱크 렉세코드의 샤를앙리 콜롱비에 분석가는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 화학업계의 생산은 2019년보다 18% 줄었으며 자동차업계의 생산 감소는 26%로 더 컸다고 지적했다.
이에 견줘 프랑스는 전력 생산에서 원전의 비중이 70%에 이른다. 애초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낮았기에 전쟁의 충격을 독일보다 덜 겪고 있다. 프랑스 화학업계와 자동차 업계의 생산은 2019년보다 각각 8%와 6% 감소하는 데 그쳐, 독일 업계보다는 사정이 낫다.
콜롱비에 분석가는 “프랑스는 독일과 달리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난 뒤 나타나는 (경기 회복) 현상의 혜택도 누리고 있다”며 올여름 프랑스 방문 관광객의 증가와 유럽을 대표하는 민항기 생산업체 에어버스의 물량 수주 확대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견조한 고용 상황과 가구의 저축률 상승에 따른 추가 소비 여력도 프랑스 경제 전망을 밝게 하는 요소들이다. 다만, 기업들이 향후 경제 전망을 점차 어둡게 보면서 고용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적신호로 꼽힌다. 프랑스 싱크탱크 ‘프랑스 경제상황 관측소’(OFCE)의 분석가 마티외 플란도 “독일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곧바로 프랑스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내년에도 프랑스 경제가 상당히 온건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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