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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북한, 실질적 위협 부상…미국 주도 안보판 뒤흔들 ‘변수’로

등록 2023-09-14 19:43수정 2023-09-15 08:33

[뉴스분석] 김정은-푸틴 밀착
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미국과 중·러의 진영 대결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뤄진 13일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 본토를 포함한 전세계 안보 환경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30년간 미해결 상태인 북핵 문제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에 큰 시름을 안기는 난제가 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번 러시아 방문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14일 조선중앙통신) 하기로 합의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뒤 지난 30여년 동안 이어져온 고립을 떨어내고, 대미 공동 전선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중·러는 냉전 종식 이후 한국과 수교한 뒤엔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북한을 홀대하며 사실상 방치해왔다. 남겨진 북한은 핵개발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통해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통한 생존의 길을 모색하려 했다. 미국은 어쩔 때는 중·러의 지원 아래(2003~2008 6자회담), 어쩔 때는 양자 협상을 통해(1994 제네바 합의, 2018~2019 북-미 핵협상) 핵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을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편입시키려 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는 북한의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전후 시작된 11번의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뤄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안타까운 ‘노 딜’로 끝나며 북한은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사실상 포기하고 ‘핵무력 고도화’의 길로 치닫게 된다.

이후 국제 정세가 크게 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 뒤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고, 지난해 2월 말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중국을 자신에 대한 ‘도전’, 러시아는 ‘위협’이라 규정했다. 중국에 대해선 쿼드, 오커스, 한·미·일 3각 동맹 등을 통해 포위망을 강화했고,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전면적인 무기 지원을 하는 한편 주요 7개국(G7) 등과 함께 가혹한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중·러는 “제한 없는 협력”을 선언하며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중이다.

이런 정세 변화는 북한에 ‘숨 쉴 틈’을 만들어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며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나선 것이다. 북·러의 접근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고립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같은 ‘외톨이’인 김 위원장을 통해 포탄 등 무기를 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국 협력은 이를 넘어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는 명확한 전략적 목표 아래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13일 러시아 우주 기술의 심장부인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김 위원장을 불러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 인공위성 발사 기술을 전수할 뜻이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김 위원장도 “정치·경제·문화를 비롯해 관심 사안 등 협조할 문제가 많고 우리가 또 방조(도움)받을 문제가 많다”며 전방위적인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나아가 “러시아가 패권주의 세력에 맞서 정의의 위업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는 러시아 정부가 취하는 모든 조처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러시아가 푸틴 대통령의 언급대로 북한에 인공위성 기술을 전수하면, 아직 의심스럽다는 평가가 많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미 본토 타격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될 수 있다. 여기에 북한이 원하는 핵잠수함 기술까지 얻게 되면, 미국은 북태평양에서 북한의 전략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미국에는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안보 위협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3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북·러가 무기 거래를 진전시킨다면 우리는 대응 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북한의 군사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어떤 합의도 우리에게는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강경 대응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 언론은 정부에 강한 맞대응을 주문하지만, 북한에 대한 ‘강 대 강’ 대응은 이후 더 큰 파국을 낳았다.

북·러의 위험한 연대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예측하긴 힘들다. 양국 간 합의 내용, 중국의 반응,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개 양상, 한·미의 향후 대응 등 복잡한 변수가 있다. 유일하게 분명한 사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남겨둔 채 하노이를 떠난 지 4년7개월 만에 북한이 세계 안보에 영향을 주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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