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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연명치료 중단 영국 아기, 하루 만에 하늘로…“존엄성 빼앗겨”

등록 2023-11-14 13:51수정 2023-11-15 00:11

희소병을 앓던 영국 아기 인디 그레고리가 13일(현지시각) 새벽 1시45분께 8개월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희소병을 앓던 영국 아기 인디 그레고리가 13일(현지시각) 새벽 1시45분께 8개월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희소병을 앓던 영국 아기가 연명치료를 중단한 지 하루도 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교황청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로마의 아동전문병원이 치료를 돕겠다고 나섰고 이탈리아 정부도 시민권을 부여했지만 영국 법원이 아기의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13일(현지시각) 영국 비비시(BBC)는 희소병을 앓던 영국 아기 인디 그레고리가 이날 새벽 1시45분께 8개월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그레고리는 영국 노팅엄의 퀸스 메디컬센터에서 호스피스로 옮겨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지 하루도 채 안 돼 눈을 감았다.

그레고리의 아버지는 입장문을 내어 “인디의 삶은 이날 새벽 1시45분에 끝났다”며 “화가 나고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보건서비스(NHS)와 법원은 인디가 더 오래 살 기회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인디가 원래 살던 가정집에서 죽음을 맞이할 존엄성도 빼앗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이탈리아 정부가 그레고리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연명치료 의사를 밝혔음에도 영국 법원에서 제동을 건 것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이다.

지난 2월 태어난 그레고리는 희소병으로 알려진 미토콘드리아병을 앓았다. 미토콘드리아병은 세포의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그레고리는 태어나자마자 영국 노팅엄의 퀸스 메디컬센터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의료진은 9월 연명치료 중단을 권고했다. 생명유지장치가 그레고리의 생명을 짧게나마 연장할 수 있지만 그레고리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희소병을 앓던 영국 아기 인디 그레고리가 13일(현지시각) 새벽 1시45분께 8개월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희소병을 앓던 영국 아기 인디 그레고리가 13일(현지시각) 새벽 1시45분께 8개월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부모는 딸에게도 삶의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며 법정 다툼까지 벌였지만 모두 패소하거나 기각당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지난달 13일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것이 그레고리에게 “최선의 이익”이라며 의료진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에 불복한 부모가 항소했지만 영국 항소법원도 같은달 23일 기각했다.

그 뒤 부모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제소했지만 유럽인권재판소도 같은달 26일 생명유지장치 중단을 금지하지 않을 것이며 영국 법원의 판결에 항소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비비시(BBC)는 전했다.

그러자 같은달 30일 교황청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로마의 아동전문병원인 제수 밤비노 병원이 그레고리의 치료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영국 고등법원은 지난 2일 그레고리를 로마로 이송해달라는 부모의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설득력 있는 새로운 의학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부모가 다시 항소했지만 항소법원은 지난 4일 기각했다.

희소병을 앓던 영국 아기 인디 그레고리가 13일(현지시각) 새벽 1시45분께 8개월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희소병을 앓던 영국 아기 인디 그레고리가 13일(현지시각) 새벽 1시45분께 8개월의 짧은 생을 뒤로하고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6일 오후 2시까지 그레고리의 생명유지장치 제거를 유예하는 법적 조처 만료를 앞두고 이탈리아 정부까지 움직였지만 영국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오후 긴급 내각 회의를 열었다. 불과 몇분 만에 그레고리에게 이탈리아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레고리의 법적 대리인이 된 이탈리아 영사관은 그레고리 이송을 영국 법원에 요청했다. 그러나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0일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그레고리를 로마로 옮기는 것도 최선의 이익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재판부는 이탈리아 영사관의 개입이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영국 항소법원은 집에서 죽음을 맞게 해달라는 부모의 마지막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한 뒤 합병증에 대처하고 그레고리가 겪을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 성명을 내어 “어린 그레고리의 가족,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용하고 그들과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며 “질병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의 모든 어린이를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도 13일 엑스(X·옛 트위터)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안타깝게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2018년 4월27일(현지시각) 연명치료 논쟁을 불러일으킨 23개월 된 영국의 알피 에번스가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한 지 닷새 만에 사망했다. AFP 연합뉴스
2018년 4월27일(현지시각) 연명치료 논쟁을 불러일으킨 23개월 된 영국의 알피 에번스가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한 지 닷새 만에 사망했다. AFP 연합뉴스

이번 일은 2018년 연명치료 논쟁을 불러일으킨 23개월 된 영국의 알피 에번스 사건과 유사하다.

당시에도 희소병으로 영국 리버풀의 한 병원에 입원했던 에번스의 부모는 연명치료 중단을 권고받고 법정 다툼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그 뒤 제수 밤비노 병원이 연명치료 지원 의사를 밝히자 이탈리아 정부는 에번스에게 시민권을 발급했다.

그러나 영국 고등법원은 끝내 에번스에 대한 사법 관할권이 영국에 있다며 이송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에번스는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한 지 닷새 만에 사망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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