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각) 새 영국 외교 장관에 임명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수도 런던의 총리 관저에서 나오고 있다. 런던/신화 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을 폭도로 지칭해 사퇴 압력을 받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을 경질하면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를 새 외교 장관으로 깜짝 발탁했다. 정계에서 물러난 지 7년이 된 캐머런 전 총리의 외교 장관 기용은 다음번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지지율이 바닥까지 떨어진 보수당의 인물난과 정책 부재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낵 총리가 13일(현지시각)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을 경질하고 제임스 클레벌리 외교 장관을 그의 후임으로 옮기는 한편 새 외교 장관에 캐머런 전 총리를 임명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이 보도했다.
수낵 총리는 “세계가 심각한 도전의 시기를 맞고 있고 우리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모든 걸 다 해야 한다”며 “우리가 지난해 이룬 성과를 기반으로 일할 새 외교 장관을 임명한 걸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캐머런 새 외교 장관은 “리시 수낵 총리가 어려운 시기에 힘든 일을 수행하는 훌륭한 총리라고 믿기 때문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2010년 5월부터 6년 동안 총리직을 지냈으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결정한 장본인이다. 친 유럽연합 성향으로 평가되는 그는 2016년 6월23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탈퇴안이 통과되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 때문에 그의 기용은 뜻밖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리가 퇴임 뒤 외교 장관으로 다시 내각에 참여한 것은 앨릭 더글러스흄이 1964년 총리에서 물러난 뒤 1970년 장관에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수낵 총리가 캐머런을 발탁한 것은 전략 부재를 보여준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지적했다. 이 신문은 “6주 전에 수낵 총리는 지난 30년 동안의 실패한 합의(컨센서스)와 단절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캐머런은 지난 13년 중 6년 동안 총리를 지낸 인물”이라며 이렇게 평가했다. 캐머런 전 총리가 지난 2021년 파산한 금융 회사 그린실캐피털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이 회사가 코로나19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로비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던 점도 논란거리다.
수낵 총리가 보수당 내 우파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브레이버먼을 경질하면서 캐머런을 기용함으로써 내부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도 커졌다고 비비시는 지적했다.
브레이버먼 전 장관은 지난 8일 영국 일간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자들을 ‘혐오 행진자’ 등으로 지칭하면서 경찰이 친팔레스타인 집회를 금지하지 않은 걸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4일에는 노숙자들에게 텐트를 제공하는 걸 규제할 방침을 정하면서 “거리에 사는 것은 생활방식의 선택”이라고 말해, 비판을 자초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수낵 총리가 내각 개편을 통해 보수당 내 분열을 추스르고 인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가 집계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지난 10일 현재 보수당의 지지율은 25%로 노동당(46%)에 2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다음번 총선은 늦어도 2025년 1월28일까지 실시해야 한다.
신기섭 선임기자,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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