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12일 미국 뉴햄프셔주 힌스데일의 이동식 주택 공원에서 지낸 제프리 홀트가 미소를 짓고 있다. 홀트는 지난 6월 82살의 나이로 380만달러(약 49억3658만원)의 재산을 마을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AP 연합뉴스
집도, 차도, 변변한 가구도 없이 공원에서 잔디를 깎는 일을 하며 검소하게 생활한 미국의 80대 남성이 마을을 위해 써달라며 50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남겨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뉴햄프셔주 힌스데일의 이동식 주택 공원에서 관리인으로 지낸 제프리 홀트는 지난 6월, 8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힌스데일은 420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주민들은 홀트가 헐렁한 옷차림으로 차량 형태의 잔디 깎는 기계를 타고 편의점으로 향하고, 큰길 옆에 기계를 세운 채 신문을 읽거나 지나가던 차를 지켜보던 모습을 기억할 뿐이었다.
홀트가 마을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고등학생들에게 운전을 가르쳐줬지만 정작 그는 차를 끌지 않았다. 대신 자전거를 탔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잔디 깎는 기계를 몰았다. 공원에 있던 홀트의 이동식 주택에는 낡은 침대 외에 다른 가구가 거의 없었다. 티브이(TV)도, 컴퓨터도 없었다.
홀트와 가깝게 지낸 에드윈 스모키 스미스 전 공원 관리인은 21일(현지시각) 시엔엔(CNN)에 “그는 매우 단순하게 지냈다”며 “그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홀트는 지난 6월 눈을 감으며 380만달러(약 49억3658만원)의 거액을 마을의 발전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는 유언장에 힌스데일의 교육, 건강, 레크리에이션, 문화를 위해 이 돈을 써달라는 내용만 짧게 남겼다.
2020년 4월4일 제프리 홀트는 미국 뉴햄프셔주 힌스데일의 이동식 주택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홀트는 지난 6월 82살의 나이로 380만달러(약 49억3658만원)의 재산을 마을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AP 연합뉴스
스미스는 홀트가 수백개의 모형 자동차와 기차를 수집하는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역사책도 수집했고 헨델과 모차르트를 비롯한 광범위한 음반 컬렉션도 갖고 있었다. 스미스는 과거 곡물 공장 관리자로 일했던 그가 돈을 어딘가에 투자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스미스는 생전에 그가 예상보다 투자가 잘 됐는데 수익금을 어디에 쓸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스미스는 21일 에이피(AP) 통신에 “홀트가 재산이 많다고 짐작했지만 그가 전 재산을 마을의 발전을 위해 내놓았다는 소식에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했다.
홀트의 여동생도 “오빠가 재산을 많이 모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여동생은 “오빠와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돈을 낭비하지 말고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며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홀트의 유산은 뉴햄프셔자선재단에 맡겨졌다. 주민들은 그의 유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심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시청 시계를 고치고 건물을 보수하거나 항상 선거에서 투표했는지 묻던 그를 기려 새 개표기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또 고등학생들에게 운전을 가르쳤던 그를 위해 온라인 운전자 교육 과정을 개설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홀트의 유산을 신탁하기만 해도 연간 약 15만달러(약 2억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마을 행정관 캐서린 린치는 에이피 통신에 “홀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남겨진 돈을 매우 검소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