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오른쪽)이 21일(현지시각)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만찬에서 잔을 부딪히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지난 21일(현지시각) 영국을 국빈방문한 가운데,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스카치 위스키에 관심이 모인다. 대통령이 국외 정상에게 받은 선물은 대통령기록물 지위를 갖게 되는데, 이 위스키는 어떻게 처리될까.
영국 인디펜던트 등 현지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찰스 3세 국왕은 이날 버킹엄궁에서 열린 국왕 주최 환영 오찬을 마친 뒤 윤 대통령에게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인 ‘라프로익 15년’ 한 병을 선물했다. 라프로익은 찰스 3세가 가장 즐겨 마시는 위스키로,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술은 지난 2008년 찰스 3세가 자신의 60살 생일을 맞아 라프로익 증류소를 방문했을 때 서명한 캐스크(술통)에서 나온 한정판이다.
지난 5월 경매에 부쳐진 라프로익 15년 특별 한정판 두 병. 드링크비지니스 누리집 갈무리
‘위스키 성지’에서 만든 한정판
라프로익은 독특한 향과 풍미로 유명한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의 대표 주자다. 2004년 미국의 주류 회사 ‘짐 빔’에 인수됐는데, 이후 2014년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가 짐 빔을 인수하면서 현재는 ‘빔 산토리’가 라프로익을 소유하고 있다. 증류소는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아일레이라는 섬에 있다. 이 섬에는 라프로익 외에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인 라가불린과 아드벡 증류소가 둥지를 틀고 있다. 이 섬이 ‘위스키의 성지’로도 불리는 이유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지난 2015년 라프로익 브랜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스코틀랜드 아일레이섬에 있는 라프로익 증류소를 찾은 모습. 빔 산토리 누리집 갈무리
찰스 3세의 라프로익 사랑은 유명하다. 라프로익은 훈연한 나무 향을 닮은 이른바 ‘피트향’이 강렬하다는 특징을 갖는데, 이 때문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라프로익의 광고 문구가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중간은 없다(Love or Hate, There is No in Between)”일 정도다. 찰스 3세는 국왕 등극 전인 1994년 우연히 방문하게 된 라프로익 증류소에서 이 술을 처음 맛봤다. 그는 증류소 책임자에게 “당신들은 이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위스키를 만들고 있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맛에 감탄한 찰스 3세는 이 증류소에 왕실 보증서를 수여했고, 이후에도 세 차례나(1998년·2008년·2015년) 더 이곳을 찾는다. 2008년엔 자신의 60살 생일을 기념하고자, 2015년엔 라프로익 브랜드 탄생 200주년을 축하러 다시 증류소를 찾았다.
그는 첫 방문 이후 증류소를 찾을 때마다 숙성 중인 위스키가 담긴 캐스크에 서명을 했는데, 두번째 방문인 1998년 서명한 캐스크는 스코틀랜드의 전역한 참전 군인을 치료하는 얼스킨병원에 기부했다. 이 캐스크에서 나온 15년 270병 중 14병에는 직접 서명을 남겼다. 이 중 두 병이 지난 5월 경매에 붙여졌는데, 당초 약 3500∼7500파운드(약 570∼1220만원)에 낙찰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입찰가가 최소 금액에 못 미치면서 유찰됐다. 찰스 3세의 서명이 없는 일반 라프로익 15년 한 병 판매가는 원화 기준 약 23만원 수준이다. 도수는 43도다.
한편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라프로익 15년 이외에도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연설집 ‘조류를 막으며(Stemming the Tide)’ 사본과 자신의 로열 사이퍼(국왕 이름 약자)와 국빈방문 날짜 등이 새겨진 크리스털 위스키 디캔터, 텀블러 잔 세트 등을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캔터는 와인, 위스키 등의 술을 잔에 따라 마시기 전에 담아 두는 병으로 주로 와인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2000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서울에서 열린 제3차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당시 시라크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한 코냑으로 대통령기록관에 소장돼 있다.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갈무리
대통령기록물 된 위스키 마셔도 될까
대통령이 임기 중 받은 선물은 통상 관련 법에 따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다. 대통령기록물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데, 보통 대통령 퇴임과 함께 행정안전부 산하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 이곳에서 관리·보전을 맡는다.
다만, 주류나 식품류처럼 영구 보존이 어려운 품목의 경우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는다. 김순빈 대통령기록관 생산지원과장은 “현재 대통령기록관실이 자체적으로 제정하는 기록물관리지침에 따르면 대통령 선물 중 액체류나 식품류는 이관 제외 대상으로 분류된다”면서도 “섭취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세부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저희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기록물의 소유권을 국가가 가지며, 이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정이 주류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주무 기관인 대통령기록관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용열 대통령기록관 정책협력관은 “이전 정부에서도 이관 안 된 술 선물들이 있는데, 역대 대통령께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