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수론 첫 아이티 방문
피해 파악 나서고 도움 호소
식민경험 등 적대관계 완화
피해 파악 나서고 도움 호소
식민경험 등 적대관계 완화
14일 오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에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엔엔>(CNN)과의 전날 인터뷰 이후 행방이 묘연해져 이웃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건너간 게 아니냐는 미확인보도까지 나왔던 프레발 대통령의 곁에는, 도미니카의 레오넬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함께 있었다. 아이티의 강진 이후 처음으로 아이티를 방문한 다른 나라 국가원수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통신 등 인프라 파괴로 프레발 대통령이 장관들과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않아 복구를 지휘할 수 없다”며, 파괴된 아이티의 현장 모습에 경악했다고 밝혔다.
아이티의 비극 앞에, 이웃 도미니카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진이 발생한 12일 대통령 대변인인 산드라 세베리노는 텔레비전에 나와 라틴 아메리카와 전세계 국가들에게 “우리 이웃에게 도움을 달라”고 호소했고, 노동부장관도 바로 아이티의 피해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됐다. 13일 가장 처음으로 구조대를 파견한 나라도 도미니카였다.
카리브해의 히스파뇰라 섬의 서쪽 3분의 1을 차지하는 아이티와 국경을 맞댄 도미니카로선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전통적 적대관계를 생각하면 ‘역사상 유례가 없던 일’이라고 <시엔엔>은 최근 보도했다.
도미니카는 1822~1844년 사이 아이티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 1844년 독립한 이후에도 20여년간 수차례 아이티 쪽의 침입에 맞서왔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상황은 역전됐다. 아이티가 상대적으로 부유해진 도미니카의 값싼 노동력 공급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1937년 도미니카 독재자 라파엘 트루이요가 양국 국경에 사는 아이티인들의 처형을 명령해 숨진 아이티인은 2만~3만명에 이른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이런 역사적 적대감정은 각각 16세기 프랑스(아이티)와 스페인(도미니카)의 식민통치 아래에서 형성된 엘리트 계층들에 의해 ‘조작되고 부풀려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존재하는 적대감정은 최근까지도 종종 문제가 됐다. 도미니카에선 지난해 11월 아이티 남성 한명이 도미니카인들에 의해 린치를 당하고 목이 잘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번 재앙은 이런 양국의 적대관계를 완화시키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도미니카 정부는 14일 부상을 입은 아이티 주민들이 비자 없이도 이름만 밝히면 자유롭게 국경을 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난민들과 함께 무너진 포르토프랭스의 교도소에서 탈출한 죄수들까지 국경을 넘어 몰려올 것을 우려하면서도,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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