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재미동포들의 정치력 신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한인들의 정치력을 과시하는 대규모 콘퍼런스를 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뉴욕/박현 특파원
[한겨레가 만난 사람]
재미 한인유권자단체 ‘시민참여센터’ 김동석 상임이사
재미 한인유권자단체 ‘시민참여센터’ 김동석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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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와 공부하다 여기서도 운동권 돼 -미국에 와보니 어떻던가? “그런데 여기 와보니 고민이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더 비겁하게 만들었다. 이곳에 와서도 민주화운동을 계속하게 됐다.” 김 상임이사는 1991년 3월 발생한 로드니 킹 사건을 겪으면서 인생 좌표가 크게 바뀌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부터 꼭 21년 전인 1992년 4월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폭동 사건이 벌어졌다.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4명의 백인 경찰관이 무죄판결을 받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동을 일으켰으며 한인타운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 한인타운이 폭삭 망하는 걸 봤다. 여기서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재미동포 운동이 어떻게 돼야 하는가 고민에 빠졌다. 여기 이슈가 중심이 되는 운동이 돼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당시 무엇이 문제였나? “재미동포들은 소수계로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만들려면 다른 소수계와 어려움을 공유하고 연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를 마치 백인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다른 소수계들로부터 고립이 된 지경이었다. 타 소수계로부터 너무 얄미운 집단으로 인식돼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사회복지 예산이 감축되고, 거기 의존하던 사람들이 배가 고파지니 거리로 나왔다. 길거리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인들의 상점이 타깃이 되었다. 백주 대낮에 한인들이 흑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예가 빈번했다.” -그래서 센터를 만든 건가? “그렇다. 미국 사회에서 존재를 인정받으려면 정치력이 있어야 함을 절감했다. 폭도들로부터 공격을 당해서 그렇게 참혹한 형편이 되었음에도 법적인 보호 대상이 안 되었다. 피해를 입었음에도 우리를 대변해줄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한인들이 투표를 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인유권자센터(시민참여센터의 전신)를 만들었다. 지금 시민참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동찬씨를 비롯해 네댓명이 시작했다.” 미 외교, 의회 통해 움직이기 쉬워
한반도 정책 등에 영향력 행사할것 -동포들은 왜 투표에 소극적이었는가? “미국에서는 상당한 의지를 갖지 않으면 투표를 하기 쉽지 않다. 시민권자가 유권자 등록하고 투표날 투표소에 찾아가서 투표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한다. 여긴 투표일이 휴일이 아니다. 백인들이 투표권을 동등하게 줬지만 소수계가 투표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리한 투표 제도가 많다.” -투표율은 얼마나 높였는가?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흑인 폭동 직후에는 이 운동에 관심이 있었으나 시일이 지나고 바쁘니까 투표를 하지 않으려 했다. 우리는 소상인들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고 자녀들 교육 등을 도와주면서 한사람씩 설득해 나갔다. 2005년까지 10여년 동안 뉴욕의 한인 3만5000명을 유권자로 등록시켰다. 90년대 중반 동포들 유권자 등록률이 10% 미만이었는데 이것을 2005년 40%대로 끌어올렸다. 2008년 대선 때는 68%까지 올라갔다. 당시 평균 투표율보다 높았다. 여기에다 한인들의 표는 거의 몰표다. 영어가 서투르니 후보자에 대한 파악이 어려워서 우리가 안내하는 대로 투표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우리 단체의 힘이 생겼다.” -정치인들이 관심을 많이 갖던가? “당연한 일이었다. 한인들은 숫자는 적어도 몰표를 준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의원들이 한인 사회를 주목하게 됐다. 이것 때문에 비자 면제가 되고 위안부 결의안이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의회에 가면 의원들이 일정을 만들어 대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풀뿌리 운동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늘 실감한다.” 김 상임이사는 한-미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재미동포들의 정치적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는 “미국 외교정책은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재미동포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재미동포들은 한국에서 파견된 에이전트가 아니라 미국에서 모범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한인 정치력 과시 콘퍼런스 희망 -‘외교정책이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외교정책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의회에서도 외교위원회는 한직이다. 그래서 외교정책에 영향을 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대만이 좋은 예다.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지금까지 이 정도 건재할 수 있는 힘은 워싱턴 의회 내 대만계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다. 이스라엘은 정상회담보다는 의회를 통해서 영향력을 더 행사한다. 이스라엘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면 자기들 대사관보다 에이팩을 먼저 찾는다. 엘에이 폭동을 겪으면서 보니, 이런 것을 제대로 파악하는 한국인이 별로 없었다. 연방의원 중에 한반도 안정과 평화, 그리고 한국인들의 염원인 통일에 대해 이해를 갖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미국에서 세금 내는 재미동포들의 몫이구나 생각을 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재미동포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워싱턴은 의회 권력이 점점 세진다. 오바마 대통령의 목표도 내년 중간선거(연방의회)를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만 건강·교육·사회 등 국내 어젠다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외교정책엔 별 관심이 없다. 한국에선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북-미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는데 실제로는 큰 관심이 없다. 국내 어젠다가 우선이다. 그래서 재미동포들이 미국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행정부에 압력을 넣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상임이사의 멘토는 고 김근태 의원이다. 그는 80년대 초반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었던 김 전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서울을 갈 때면 우선 마석의 김근태 묘를 찾아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는 “현재 시민참여센터가 하는 일도 사실은 ‘김근태 의장님의 유언과 같은 사업”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의 유언 같은 사업이란 무슨 말인가? “김 전 의원은 나에게 ‘너는 미국에 가 있으니 미국 의회에서 한국 힘을 길러야 한다. 일본에 비하면 보이지도 않으니까’라고 만날 때마다 얘기했다. 목표를 길게 잡고 의회에 힘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어떤 의미에서 이 사업을 강조했는가? “김 전 의원은 한국 국민들의 뜻을 미국 의원들이 잘 모른다고 봤다. 지금까지 미국에 영향력을 주는 한국인이 주로 한국 기득권층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업이든 고위관료든 다들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회에서 미국 의회에 영향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시민참여센터의 롤모델은? “그들의 철학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전략과 방식은 분명히 배워야 할 조직이 에이팩이다. 이건 이스라엘 단체가 아니고 미국 시민단체다. 이들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개입했으면 히틀러에게 죽어간 유대인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2차 대전 직후 그 각성으로 만들어진 게 에이팩이다. 그래서 미국내 유대인 중에 보수·진보 모든 세력이 여기에 모였다. 전세계 유대인의 안위를 책임진다는 게 그들의 명분이요 목표다.” -앞으로 비전은 무엇인가? “민족역량을 구축하는 일에 미국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미국내 한인들의 정치력을 결집·신장시키고자 한다. 매년 워싱턴에서 한인들의 정치력을 과시하는 대대적인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꿈을 갖고 있다. 지금은 미주 한인사회도 보수, 진보 이렇게 나눠져 있지만 점차 해소될 것이라고 본다. 재미동포들이 전세계 한인들의 안위를 보호하도록 미국의 힘을 가지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비전이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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