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저녁(현지시각)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한 성탄 전야 미사에서 아기 예수상에 입을 맞추고 있다. 바티칸/AFP 연합뉴스
“진정으로 성탄절을 축하하고 싶다면 연약한 신생아(아기 예수)의 순진무구함, 그가 누워있는 곳의 소박함, 배내옷의 부드러운 사랑을 묵상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저녁(현지시각)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한 성탄 전야 미사에서 “이 시대의 구유에 누워있는 어린이들, 고통받는 세계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예수의 탄생을 맞자”고 촉구했다고 <바티칸 뉴스> 등 외신들이 전했다. 교황은 “이런 어린이들은 폭격을 피하기 위한 지하에 숨어있고, 대도시의 길바닥 위에 있고, 이민자들을 가득 태운 선박 밑바닥에 있으며, 출생이 허용되지 않거나, 아무도 배고픔을 해결해줄 사람이 없어 울고 있고, 장난감 대신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며 시리아 내전 등 분쟁과 극심한 빈곤, 무분별한 낙태 등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어린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는 누군가에게 태어날 장소를 거절당했고 많은 이들에게 냉대받았다”며 “성탄 축제의 주인공이 예수가 아닌 우리 자신이 된다면, 상업주의의 빛이 예수의 빛을 그늘로 몰아낸다면, 선물만 신경쓰며 소외된 이들을 냉대한다면, 오늘날에도 그와 똑같은 냉담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속적 욕망에 인질로 붙잡힌 성탄을 풀어줘야 한다”고도 했다.
프란시스코 교황은 그러나 “우리 삶의 어두운 면에도 불구하고 성탄은 본질적으로 희망을 발산한다”며 “아기 예수의 겸손하고 무한한 사랑을 묵상하며 감사드리자”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탄 전야 미사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강조한 배경에는 올해 세계 곳곳에서 내전과 테러로 목숨을 위협받는 아이들이 많았던 데 있다. 5년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알레포에서는 성탄 전야 하루 전날인 23일에도 어린이들이 숨졌다. 영국에 본부를 둔 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는 23일 알레포에서 공습과 폭탄 공격이 재개돼 민간인 6명이 숨졌는데 이중 2명은 어린이라고 밝혔다.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부군은 러시아 공습 지원을 받아 시리아 최대 도시인 알레포를 지난 22일 완전 장악했다. 하지만 아사드 정부군과 퇴각한 반군 사이 전투는 23일 재개돼, 사망자가 나왔으며 어느쪽 공격으로 희생자가 발생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알레포에서는 아사드 정부군과 반군 사이 전투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 전투가 한창 격렬했던 때인 지난 8월 보름 동안에만 민간인 327명이 숨졌는데, 이중 76명이 어린이였다. 지난 9월에는 시리아 알레포에 살았던 바나 알라베드라는 이름의 7살 소녀가 “전쟁을 잊기 위해 책을 읽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당시 알레포에서는 아이들이 집속탄을 장난감인 줄 알고 가지고 놀다가 터져 숨지는 등 참사가 끊이지 않았다. 알라베드는 정부군이 알레포 점령 전 반군과의 휴전 시기에 시리아를 떠나서 현재 터키에 머물고 있다.
영국에 가기 위해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칼레에 머물고 있던 어린이 난민들은 프랑스 정부의 칼레 난민촌 철거로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이들 어린이 난민 숫자가 2000명에 육박한다고 전했다. 칼레 난민촌 철거 두달 전인 지난 9월에는 영국에 가려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14살 소년이 트럭에 올라타려다가 떨어져 차에 치여 숨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4일 임기 중 마지막 성탄 메시지에서 “우리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대접해야 한다”며 “이건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신념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 가치일뿐 아니라 유대계 미국인과 무슬림 미국인 그리고 불신자에게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조일준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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