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 무슬림 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미국 시민들이 29일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국제공항 앞에서 “대규모로 저항하라”, “부끄러운 줄 알라, 도널드”, “우린 모두 이주자들” 같은 구호를 적은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인디애나폴리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 무슬림 이민’ 행정명령이 새해 벽두부터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및 아프리카 이슬람 7개국 시민들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을 실행하자 당사국 뿐 아니라 세계 이슬람권 전체가 들끓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 맹방인 서유럽 국가들도 한목소리로 깊은 우려와 비판을 쏟아냈다. 이주·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트럼프 진영 대 반트럼프 연대 전선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30일 외무부 성명에서 “근본주의와 테러리즘을 특정종교와 연관 짓는 건 틀렸다.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처가 전세계의 ‘테러와의 전쟁’과 ‘난민 대응’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이라크 의회 외교위원회는 29일 “이라크는 테러와의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데 이런 식의 대접은 부당하다”며 “정부에 미국 정부의 결정에 보복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라크 정부가 이슬람국가(IS) 격퇴전 세력으로 공인한 시아파 준군사조직연맹 ‘대중 동원’도 미국인의 이라크 입국 금지, 이라크 내 미국인 추방 같은 보복 조처를 주장했다.
이란 외무부도 전날 긴급 성명을 내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욕적인 행정 명령에 이란도 똑같이 대응해 미국인의 이란 입국을 지금처럼 계속 금지한다”고 밝혔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30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의) ‘#무슬림 금지’는 극단주의자들과 지지자들에 주는 엄청난 선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집단 차별은 극단주의 선동가들이 자신들을 부풀리려 악용하는 균열을 깊게 만들어 테러리스트 신규 충원을 도와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무슬림 이민 행정명령을 발동한 다음날인 28일(현지시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독일 총리실은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네바 난민협약 준수 의무에 대해 설명했다고 밝혔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앞서 28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반이민 행정명령에 유감을 표시하고 ‘제네바 난민협약’의 준수 의무에 대해 설명했다고 독일 총리실 대변인이 밝혔다. 스테판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메르켈 총리는 테러리즘에 대한 필요하고 단호한 싸움이 특정 출신이나 종교를 싸잡아 의심하는 것을 정당화하진 않는다고 믿는다”면서 “제네바 난민협약은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에 바탕해 분쟁난민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며 모든 조인국은 준수 의무가 있다는 것을 독일 정부가 미국 대통령에게 설명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난민협약의 의무를 지키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난민을 거부한다면 우린 그에 대응해야 한다”며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자기 중심주의는 ‘막다른 골목’이라고 경고했다.
서방 주요국 지도자들의 트위터 논평도 이어졌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우리는 유럽의 가치, 즉 열린 사회, 다양한 정체성, 차별 않기를 지킬 것”고 밝혔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박해와 테러, 전쟁을 피해온 난민들을 캐나다는 종교와 신념에 상관없이 환영한다.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다”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무장관도 “미국의 결정에 깊이 우려한다. 그건 사람들 사이에 불신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 무슬림 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미국의 무슬림 여성들이 29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국제공항 앞에서 “트럼프는 엿먹어라”, “장벽 반대, 백인 우월주의 반대” 등의 구호를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인디애나폴리스/로이터 연합뉴스
수아드 압둘 카비르 미국 퍼듀대 교수(인류학)는 29일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 기고에서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은 자신이 남발해왔으나 지킬 수 없는 선거 공약들로부터 지지자들의 관심을 ‘외국인 혐오’쪽으로 돌리려는 속임수이자 위험한 시선 돌리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가 취임 직후부터 내놓고 있는 일련의 조처들이 그 대상인 비백인 공동체 뿐 아니라 결국엔 자신의 지지자들도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