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16일 오후 무장한 경찰이 한 이용객을 검문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 피살 사건은 용의자가 속속 붙잡히고 있지만, 오히려 사건은 점점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현재까지 붙잡힌 용의자 3명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여러 나라 국적자들이 섞여 있다. 또 보도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범행 과정을 보면,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가 김정남의 시선을 끌고, 이때 베트남 국적의 도안티흐엉(29)이 뒤에서 몰래 접근해 스프레이를 뿌리고, 독극물이 묻은 손수건을 김정남의 얼굴에 대고 10초가량 누르는 등 역할을 나눠 기습적으로 범행을 벌였다. 여성 2명이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이들에게 범행을 지시한 20~50대의 남성 4명은 멀찌감치 떨어진 식당에서 이 상황을 지켜봤다. 범행은 불과 몇초 만에 끝났고, 범인들은 순식간에 현장에서 몇 갈래로 나뉘어 뿔뿔이 사라졌다.
여기까지 보면, 훈련받은 ‘전문 공작원’의 조직적 범행인 것처럼 비친다. 현지 경찰은 지난 15일 “이번 사건이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 흐엉은 범행 이틀 뒤인 15일 범행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에 그대로 나타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곧이어 용의자인 무하맛 파릿 빈 잘랄루딘(26)과 그의 여자친구인 아이샤도 붙잡혔다. 흐엉은 경찰에서 “4명의 남성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이후 혼자 남았고,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고 진술했다. 그는 “장난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그가 11일부터 공항 인근 호텔에서 묵었고, 1만링깃(약 256만원)의 돈뭉치를 들고 있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청부’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그가 ‘4명의 남성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범행 지시’를 받은 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이후 남성들로부터 그대로 버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결국 이번 사건은 ‘남성 용의자들’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남성 용의자들도 ‘공작원’이 아닌, 현지에서 고용된 ‘중간 행동책’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말레이시아 중문지 <동방일보>는 현지 고위소식통을 인용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암살에 가담한 6명이 ‘특정 국가의 정보기관에 소속된 공작원’이 아니라, 모두 ‘살인 청부를 받은 암살단’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경우, 이들에게 범행을 지시한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이번 사건의 성격은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만일 이 ‘지시자’가 포착되지 않는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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