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 윌버 로스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달 22일 백악관에서 500억달러의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에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3일(현지시간)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약 500억 달러(약 54조원) 상당의 1333개 대상 품목을 발표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이날 발표한 품목은 중국산 첨단기술 제품, 의약, 항공, 반도체부터 기계류, 화학제품까지 망라하고 있으나, 특히 중국의 10대 핵심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에 들어있는 분야를 주로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성능 의료기기, 바이오 신약 기술, 제약 원료 물질, 산업 로봇, 통신 장비, 첨단 화학제품, 항공우주, 해양 엔지니어링, 전기차, 발광 다이오드, 반도체 등이 제재 리스트에 포함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의 관세 목록은 중국이 우위를 차지하려는 기술을 겨냥했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도 최근 미 의회에서 “‘중국제조 2025’의 10대 핵심 업종은 관세를 부과하는 중점 대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 언론은 또 이번 조치가 중국의 ‘지식재산 도둑질’을 응징하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이번 조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백악관에서 중국산 수입품 중 500억 달러 상당 품목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투자도 제한하는 내용의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의 1300개 관세 대상 품목 발표는 중국 정부가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미국산 수입품 128개 품목에 대한 보복 관세 조치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미국의 이번 대중 무역 보복 조치는 다음달 15일까지 공청회 개최 등을 포함한 여론 수렴을 하고, 22일까지 기업들의 반대 의견 제기 등의 절차를 거친 뒤 발표된다. 미국은 그 전까지 중국으로부터 물밑 협상을 통해 큰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상무부는 즉각 보복조처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중 간에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역전쟁의 불길이 크게 확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조처는 미국이 중국에 대해 부과한 최대 규모의 무역 보복 조처중 하나다.
중국 상무부는 4일(현지시각) 미 무역대표부(USTR)가 관세부과 품목을 발표한 지 한 시간여만에 발표한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중국은 (미국의 조치에) 결연히 반대하고 조만간 법에 따라미국산 상품에 대해 동등한 세기와 규모로 대등한 조치를 하겠다”고 보복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오펑 상무부 대변인은 이날 <중국중앙텔레비전>(CCTV)과 인터뷰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엄정한 교섭을 무시하고, 아무런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관세부과를 발표했다”며 ”이는 전형적인 일방주의이자 무역 보호주의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이번에 발표한 명단은 40년간의 중미 무역협력과 상호 공영의 이익, 양국 업계의 요청과 소비자의 이익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중국은 즉시 미국의 관련 행위에 대해 WTO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 대외무역법 관련 규정에 따라 미국산상품에 대해 동등한 세기와 규모로 대등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이 조치는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업계에서도 중국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가 양국간 무역 갈등만 키우며,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에게도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미국 기업들에게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고 기술을 도둑질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중국과의 거래 관행과 무역적자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USTR 발표에 앞서 백악관에서 “우리는 지난 25년 동안 중국의 재건을 도왔다”면서 “우리는 중국과 함께 가고 싶지만, 무역적자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베이징/이용인,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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