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베네수엘라아 난민들이 콜롬비아와의 국경을 가르는 강을 건너 새 삶터를 찾아나서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다섯 남매의 아버지인 시리아 난민 압둘라는 이번 달로 꼬박 5년을 요르단의 아즈라크 난민 캠프에서 살고 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왔을 때만 해도 난민살이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대다수 시리아 난민들의 희망과 목표는 고향에 돌아가는 겁니다. 고국이 다시 안전해져서 집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해요.” 그러나 내전으로 바뀐 게 하나도 없이 분쟁이 지속되고 일자리와 의약품과 먹을 게 없는 고국의 현실이 귀환을 가로막는다.
전 세계의 강제이주민이 처음으로 70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20년새 두 배나 급증한 수치이자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지난 70년간 집계한 이래 최대 규모다. 그 절반은 18살 이하 어린이·청소년이었다.
유엔난민기구가 세계난민의 날(6월20일)을 하루 앞둔 19일 공개한 <글로벌 동향보고서 2018>을 보면, 전쟁, 박해, 내전 등을 피해 삶터에서 쫓겨난 사람이 7080만명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해에는 베네수엘라에서만 약 400만명이 생명을 위협하는 극심한 빈곤과 범죄를 피해 자국 땅을 떠나면서, 2011년 ‘아랍의 봄’에 이은 내전으로 유럽 난민위기를 불러온 시리아 난민과 함께 세계최대의 강제이주 사태의 진앙이 됐다. 이번 보고서에는 베네수엘라 난민 위기의 상황이 일부만 반영돼, 전체 강제이주자 수도 “보수적으로 집계”한 수치라는 게 유엔난민기구의 설명이다.
17일 아프가니스탄의 한 국내실향민 어린이가 유엔이 제공한 임시 캠프 안에서 걸어가고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아프간 대표부는 긴급 구호가 필요한 57만명의 어린이들에게 보건·위생·식수·영양·교육 등을 제공하기 위한 ‘어린이들을 위한 인도적 행동(HAC)’ 계획을 위해 5000만 달러의 지원금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H6헤라트/SEPA 연합뉴스
세계 인구 100명 중 1명을 차지하게 된 강제이주민은 크게 3개 그룹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무력충돌과 만연한 폭력, 재난 등으로 삶터에서 쫓겨난 사람들 중 본인의 국가 안에서 피신 중인 ‘국내 실향민’이 4130만명(58.3%)로 가장 많았다. 둘째, 내전이나 전쟁, 박해로 국적국을 강제로 떠난 ‘난민’이 2590만명(36.6%)이나 됐다. 여러 유형의 강제이주민 중에서도 가장 비참하고 개별 국가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국제 현안이다. 셋째, 출신국을 떠나 제3국에서 국제 보호를 받으며 난민지위 심사를 기다리는 ‘난민 신청자’가 350만명(5%)이다. 그러나 지난해 제3국에 재정착한 난민은 9만2400명으로, 재정착 대기 난민의 7%에 불과했다.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들은 빈부 차이와 반비례했다. 유럽과 북미를 비롯한 고소득국가는 자국 인구 1000명 당 2.7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는 반면,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의 난민 수용 규모는 평균 5.8명으로 부유국의 갑절이 넘었다. 최빈국들에 속하는 나라들이 세계 전체 난민의 3분의1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세계 난민의 절대 다수가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그 80%가 인접국으로 피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민 규모에 견줘 수용자 또는 귀환자가 턱없이 부족한 까닭에 난민 생활의 지속 기간도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난민기구의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난민 5명 중 4명은 최소한 5년의 난민생활을 했으며, 5명 중 1명은 20년 이상 난민으로 살고 있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는 “난민 문제는 모든 국가가 공동의 선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거대한 도전 과제 중 하나”라며 국제사회의 적극적 관심과 협력을 호소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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