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쓴 홍콩 전투경찰들이 28일 홍콩 증권거래소의 항셍지수 하락을 알리는 전광판 앞에 서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홍콩을 둘러싼 패권 다툼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홍콩의 위상 추락은 중국에는 위안화 국제화와 국제 자본 조달 측면에서, 미국에는 흑자를 내는 수출 시장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미-중이 정치적 이유로 ‘홍콩 죽이기’를 실행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승자 없는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7일(현지시각)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의회에 보고함으로써, 미국이 홍콩에 대한 경제·통상 분야 특별 지위를 박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특별 지위는, 전세계 자본이 안심하고 홍콩에 투자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전판으로 작용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홍콩 경제는 중국의 대외무역 창구이자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라는 위치를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중국의 개방 확대와 함께 대외무역 창구 기능은 차츰 줄고 있으나, 금융 중심지로서의 전략적 위치는 여전하다. 특히 중국이 미국 달러를 견제하고 위안화를 국제 통화로 키우려고 하면서, 홍콩 금융 시장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해졌다.
중국은 2009년 처음 홍콩에 위안화 거래를 허용하고, 2010년엔 홍콩에서 외국 기업의 위안화 표시 채권(딤섬본드) 발행을 허용하는 등 금융 자유화와 위안화 국제화 실험실로 홍콩을 활용해왔다. 이는 중국 정부의 직접 규제 면제와 미국의 지위 인정이라는 두 축이 전제된 것인데, 미-중 관계가 파국으로 가면 두 축이 동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지난달 중국의 개입 확대 등을 이유로 홍콩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내린 바 있다. 현재 중국의 신용등급은 홍콩보다 낮은 A+다. 홍콩 신용등급 하락은 기업 등의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 상원이 지난 20일 중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을 어렵게 하는 ‘외국기업책임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중국 기업의 국제 자본 조달 측면에서 홍콩 증시의 중요성이 더 커진 것도 중국으로선 부담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온라인게임업체 넷이즈와 전자상거래업체 징둥닷컴이 미국의 규제를 의식해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2018년 홍콩과 무역에서 330억달러(약 41조원)의 흑자를 기록한 미국으로서도 ‘홍콩 죽이기’는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이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보니 글레이저의 말을 인용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 대응은 중국보다 홍콩에 더 큰 해를 끼칠 것이며, 자칫 자본과 외국인, 일부 홍콩인들의 홍콩 탈출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국이 국제 자본흐름 규제에 나서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시하는 미국 증시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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