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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태풍보다 올림픽이 두려워요”…올림픽에 쫓겨난 일본 노숙인들

등록 2021-08-18 11:59수정 2021-08-19 02:33

올림픽내비게이션
일본 시민들이 지난달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 근처에서 “올림픽은 가난한 사람을 살해한다”고 적힌 걸개를 들고 올림픽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일본 시민들이 지난달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 근처에서 “올림픽은 가난한 사람을 살해한다”고 적힌 걸개를 들고 올림픽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 폐막일인 지난 8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 이날 폐막식은 일부 귀빈과 취재진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개막일인 7월23일 4225명이던 일본 내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는 1만4472명으로 3배 이상 늘어난 상태였다. 일본 여론은 들끓었고, 경기장 밖에서는 올림픽 반대 시위가 열렸다. 남의 집 마당에서 집주인은 무시한 채 잔치를 벌이는 듯 민망한 모양새였다.

폐막식 다음날인 9일 국립경기장에서 약 2㎞ 떨어진 시부야 요요기 공원. 이곳에는 집안 잔치 때문에 아예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노숙인들이다. 그들은 올림픽 개최 도시에 거주한다는 죄로 그나마 남은 보금자리마저 빼앗겼다. 일본은 종합 3위에 오르며 역대 최고 성적을 냈고,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이날 “(올림픽 개최는) 일본이라서 가능했다”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이곳 노숙인들은 올림픽에 관해 물으면 숨거나 화를 냈다.

이날 도쿄는 태풍의 영향으로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천막에 의지해 사는 테츠오 오가와(42)는 “우리는 태풍보다도 올림픽이 무섭다”고 했다. 테츠오 오가와는 노숙인 당사자로, 요요기 공원에서 10년 이상 살며 노숙인 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도쿄올림픽 반대 운동에도 참여했다.

테츠오 오가와가 9일 일본 도쿄 시부야 요요기공원에 있는 자신의 텐트 앞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이준희 기자
테츠오 오가와가 9일 일본 도쿄 시부야 요요기공원에 있는 자신의 텐트 앞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쿄/이준희 기자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때는 2013년. 테츠오는 그때부터 노숙인에 대한 “배제”가 시작됐다고 돌아봤다. 그해 2월 입후보지 시찰을 위해 도쿄를 방문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시찰 버스가 지나가는 도로변에 노숙인들의 천막 등에 철거 경고가 붙었다. 올림픽 시찰 때문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노숙인들은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고, 이동 기간이 시찰 기간에 포함돼 있어서 올림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노숙인들은 도쿄올림픽 관련 시설 건설 등을 이유로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했다. 테츠오는 “그나마 사회운동과 관련 있는 노숙인들은 형편이 나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두 쫓겨난 뒤에야 그 사실이 알려지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회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패럴림픽까지 생각하면 최소 2달 이상 보금자리를 잃는 셈”이라고 했다.

노숙인에게는 코로나보다도 올림픽으로 인한 거주지 박탈이 더 두려운 일이었다. 테츠오는 “올림픽으로 해외 방문객이 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이 없었다”면서 “정말 두려운 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규모가 축소되어서 애초 당국의 계획보다는 노숙인들이 배제되는 경우가 줄어든 것 같다”고 안도하기도 했다.

요요기 공원에 있는 한 노숙인의 보금자리. 테츠오 오가와는 “이곳 노숙인 중에는 텐트 없이 생활하는 이들도 꽤 많다”면서 “텐트는 직접 짓는 집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급박하게 쫓겨날 경우에는 다시 짓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이준희 기자
요요기 공원에 있는 한 노숙인의 보금자리. 테츠오 오가와는 “이곳 노숙인 중에는 텐트 없이 생활하는 이들도 꽤 많다”면서 “텐트는 직접 짓는 집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급박하게 쫓겨날 경우에는 다시 짓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이준희 기자
한 노숙인이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음주 금지 안내문이 붙은 펜스를 바라보고 있다. 우에노 공원은 일본의 대표적인 노숙인 집결지였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각종 행정 시책으로 인해 급속도로 노숙인 숫자가 줄어 들었다.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는 소설 <제이아르(JR) 우에노역 공원 출구>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타격을 입은 도호쿠 지역 출신 주인공이 1964 도쿄올림픽 건설현장으로 돈을 벌러 상경했지만, 갖은 불행을 겪으며 결국 노숙인이 된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다. 도쿄/이준희 기자
한 노숙인이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음주 금지 안내문이 붙은 펜스를 바라보고 있다. 우에노 공원은 일본의 대표적인 노숙인 집결지였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각종 행정 시책으로 인해 급속도로 노숙인 숫자가 줄어 들었다.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는 소설 <제이아르(JR) 우에노역 공원 출구>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타격을 입은 도호쿠 지역 출신 주인공이 1964 도쿄올림픽 건설현장으로 돈을 벌러 상경했지만, 갖은 불행을 겪으며 결국 노숙인이 된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다. 도쿄/이준희 기자
올림픽에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한국도 1988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며 ‘외관상 이유’로 많은 노숙인을 몰아냈다. 2016 리우올림픽 때는 빈민층을 ‘파벨라’(빈민촌) 안에 밀어 넣은 채 대회를 치렀다. 테츠오는 “올림픽이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 적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며 “건설업자, 덴츠(일본 대형광고회사), 이들에 얽힌 정치인들이야말로 올림픽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가진 자들이 올림픽으로 부를 늘리는 동안, 가난한 자들은 올림픽이 낳는 각종 부작용에 신음한다. 일본 주간지 <프라이데이>는 지난 6월25일 일본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노숙인을 위한 각종 소일거리가 사라지며 15년 만에 길거리 구걸이 다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올림픽과 확진자 증가는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개막 이후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고통의 시간이 더 길어지는 모양새다. 코로나 확산으로 경제 정상화가 더욱 요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둔 7월20일 총회를 열어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기존 올림픽 모토에 ‘다 함께’(Together)라는 말을 더했다. 그 함께할 대상에 빈민은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일본에선 일반 사람들의 목숨보다 선수들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목숨의 값이 다른 거죠. 물론 대회를 연 건 애초에 선수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부흥을 위한 것도 아니었죠. 당연히 권력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선 생각도 안 했을 거예요.”

<한겨레>에 올림픽 폐막 소감을 밝힌 20대 일본 여성의 말을 보면, 여전히 올림픽의 길은 아득해 보인다.

도쿄/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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