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이사장이었던 고 다카자네 야스노리
“일본이 20세기 초 제국주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어느 나라도 일본을 흔쾌히 믿을 수는 없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데 앞장섰던 일본인 다카자네 야스노리(1939~2017)의 생각과 생애를 알리는 출판 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다. 그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평화자료관 이사장과 나가사키대 교수로 일하며 평생 평화운동을 실천한 양심적 지식인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군함도 탄광의 강제징용 실상을 알리고, 조선인 연행피해자와 원폭피해자를 헌신적으로 지원했지만 한국에는 이름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출판사 삶창은 지난 20일 다카자네의 유고집 <흔들림 없는 역사 인식>을 펴내는 크라우드 펀딩(tumblbug.com/dakazane)을 시작했다. 사흘 만인 23일, 목표액 200만원의 54%인 108만원을 모았다. 후원은 9월19일까지 가능하다. 목표액을 달성하면 9월 안에 원고를 확정 짓고, 10월 말 출판을 마칠 예정이다.
유고집에는 그가 논문과 비평으로 남겼던 △일본의 침략사상가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 비판 △가해책임과 전후보상 근거 △한국과 중국 등에서의 강제동원 피해자 실태 등을 담는다. 원폭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가해사실’만 전시한 평화자료관의 활동상과 생애 연보, 저작 목록도 소개한다.
다카자네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나 6살 때 일본으로 돌아간 뒤 야마구치현에서 성장했다. 1964년 규슈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석사·박사 과정을 거쳐 1969년 나가사키대 강사로 부임했다.
그는 1977년 동료의 요청으로 일본에서 불법 체류한 한국인을 추방하기에 앞서 장기 구금하는 장소로 악명이 높았던 오무라시 수용소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 침략전쟁에 가담한 과거에 대해 속죄하며 평화운동가로 변신했던 오카 마사하루(1918~1994) 목사를 만나 큰 감화를 받고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사회운동에 눈을 뜬 그는 이후 오카 목사와 함께 행동하며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과 대표,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이사장, ‘시민운동네트워크 나가사키’와 ‘재외 피폭자 지원 연락회’의 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40여년 동안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연행자와 원폭피해자의 실태를 조사하고 “강제연행한 만큼 피폭에 대한 책임이 일본에 있다”며 반성과 보상을 강조해왔다.
1995년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설립한 이후 한해 3만명의 방문객을 비롯해 소설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 인권운동가인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베트남전의 진실을 추적한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 등한테 일본의 가해 책임을 역설했다.
1992년 5월 소설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과 함께 사진을 찍은 다카자네 야스노리.
2015년 10월 인권운동가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를 만난 다카자네 야스노리.
2016년 8월9일 나가사키 원폭피해 조선인 희생자 추모집회에 선 다카자네 야스노리.
다카자네 야스노리가 2013년 8월 베트남전의 진실을 3부작으로 그린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자료를 번역한 원폭피해자 지원 운동가 전은옥씨는 “다카자네 선생 덕에 나가사키 조선인 원폭피해 상황과 하시마(군함도) 탄광 조선인 사망자 실태 등이 알려질 수 있었다”며 “그가 한일 민중연대를 열망하며 시민의 힘으로 평화자료관을 열었듯, 아직 일본에서 나오지 않은 그의 유고집 단행본을 시민의 힘으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일본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