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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외교·안보 공세에 에너지 협박까지…러, 일본에 전방위 보복

등록 2022-07-07 21:35수정 2022-07-08 02:43

러-일 관계, 탈냉전 이후 최악으로
일, 미국 등과 함께 제재 쏟아내자
러, 비우호국 지정·어업협정 중단
‘사할린-2’ 일 기업 철수 압박하고
“석유도 가스도 못 얻을 것” 경고도
군함 5척, 일 열도 휘감고 돌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6일 모스크바에서 공기업 연합곡물회사(UGC)의 최고경영자인 드미트리 세르게예프에게 보고를 듣고 있다. 세르게예프 최고경영자는 러시아 정부가 흉작을 대비해 올해 밀 100만t과 설탕 9만t을 수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6일 모스크바에서 공기업 연합곡물회사(UGC)의 최고경영자인 드미트리 세르게예프에게 보고를 듣고 있다. 세르게예프 최고경영자는 러시아 정부가 흉작을 대비해 올해 밀 100만t과 설탕 9만t을 수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석유도 가스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지난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본을 상대로 한 심상치 않은 경고글을 올렸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 적극 참여하는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할 수 없게 될 것이란 ‘위협’이었다. 기하라 세이지 관방 부장관은 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발언에 대해 “코멘트를 삼가겠다”며 말을 아꼈다.

지난 2월24일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가 보인 모습을 보면, 이 발언이 ‘단순한 경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뤄진 뒤, 일본이 서구 주요국들과 함께 여러 제재 조처를 쏟아내자 러시아는 에너지·영토·외교·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고강도 압박을 가하고 있다. 1956년 국교 정상화 이후 러-일 양국이 쌓아 올린 여러 성과들이 무너지며 탈냉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 대러 제재에 한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한국 입장에서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문제인 셈이다.

가장 뼈아픈 부분은 역시 에너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가스 개발사업인 ‘사할린-2’의 운영 주체를 새로 만드는 러시아 법인으로 이관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외국 기업은 새 회사 설립 뒤 한달 안에 러시아 정부가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주식을 취득할지 여부를 알려야 한다. 조건도 문제지만, 지분을 요구해도 러시아 정부가 동의할지 불투명하다. 이 사업엔 러시아의 가스프롬(지분 50%)과 영국·네덜란드의 합작회사인 셸(27.5%), 일본의 미쓰이물산(12.5%)·미쓰비시상사(10%)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셸은 지난 3월 사업 철수를 발표했지만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당분간 유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결국 이 조치는 대놓고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이 수입하는 액화천연가스(LNG) 가운데 러시아산은 약 9%에 이른다. 이 물량 대부분이 ‘사할린-2’에서 온다. 천연가스 공급처는 단기간에 대체하기가 쉽지 않아, 러시아가 주지 않으면 일본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러시아 대신 단기계약(스폿) 시장에서 구매할 경우 최대 2조엔(약 19조원)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측된다. 러시아가 이 조처를 꺼내 든 것은 일본이 주요 7개국(G7)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등 새 제재에 합의한 직후였다.

전쟁이 시작된 뒤 서구와 러시아는 지난 넉달 반동안 제재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왔다. 일본 정부는 개전 직후 주요 7개국 등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비자 발급 중단, 자산 동결, 수출 금지 등의 제재안을 발 빠르게 발표했다. 그러자 러시아도 3월7일 제재에 참여한 한·미·일과 유럽연합(EU) 등 48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뒤, 본격 대응에 들어갔다. 같은 달 21일 러시아 외교부는 “현 상황에서 일본과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지속할 의사가 없다”며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문제를 포함한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러-일 관계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직격한 것이다.

공방은 외교관 추방과 어업 문제까지 확산됐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 정부가 4월 푸틴 대통령 등 398명과 단체 28곳을 대상으로 자산 동결 조처를 발표하자, 러시아는 일본 외교관 8명을 추방하고, 기시다 총리 등 일본인 63명을 상대로 무기한 입국 금지를 결정했다. 지난달 7일엔 1998년 일본과 체결한 어업협정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협정은 두 나라가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쿠릴열도 남단 4개 섬 주변 해역에서 일본 어선들이 러시아 당국에 협력금을 내고 할당된 쿼터 안에서 안전하게 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군사적으로 일본을 압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러시아 군함 10척은 3월10~11일 일본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 쓰가루해협을 통과해 동해로 진입했고, 지난달에도 군함 5척이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열도의 태평양 쪽 지역을 반 바퀴 휘감아 도는 모습이 포착됐다. 일본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발생한 문제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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