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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현장] 반도체 ‘잃어버린 30년’ 되찾겠다…들썩이는 일본

등록 2023-02-15 09:00수정 2023-02-15 09:28

구마모토 TSMC 건설 현장
정부가 사업비 40% 외국기업 지원
일본 남부 규슈의 구마모토현에 있는 대만 티에스엠시(TSMC)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모습. 올해 12월 완공하고 1년 뒤 반도체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구마모토/김소연 특파원
일본 남부 규슈의 구마모토현에 있는 대만 티에스엠시(TSMC)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모습. 올해 12월 완공하고 1년 뒤 반도체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구마모토/김소연 특파원

“티에스엠시(TSMC) 건설 현장 말이죠? 타세요.”

8일 일본 도쿄에서 비행기로 2시간 정도 날아 도착한 규슈의 구마모토 공항. 택시 운전사는 익숙한 듯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많이 찾아와 길을 잘 알아요.” 15분 정도 달리자, 양배추밭 사이로 대규모 공사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 2m 높이의 가벽으로 둘러싸인 현장에선 수십대의 크레인, 굴착기, 대형 트럭 등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티에스엠시가 일본에 건설 중인 첫 반도체 공장이다. 전체 부지는 약 21만㎡로 도쿄돔 4.5개의 크기다. 사업비 1조1000억엔(10조6000억원) 가운데 일본 정부가 40%가량인 4760억엔(약 4조6000억원)을 보조한다. 일본에서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외국 기업에 대한 파격 지원이다. 반도체를 만드는 시설인 팹(Fab)과 사무실 건물이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봄 시작된 공사는 올해 12월 완공돼 1년 뒤인 내년 12월 반도체의 첫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현장은 티에스엠시와 일본의 소니, 자동차 부품 업체 덴소가 출자한 자회사 ‘제이에이에스엠’(JASM)이 건설·운영을 맡고 있다. 맞은편 5분 거리엔 소니의 반도체 전문기업인 ‘소니 세미컨덕터 솔루션스’ 공장이 있다. 10분 정도 더 가면 세계적 반도체 장비 업체인 ‘도쿄일렉트론 규슈’의 공장이 있다. 티에스엠시 공장이 완성되면 이곳 일대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새 메카’로 우뚝 서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일본은 30년 동안의 침체를 뚫어내는 거대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시장은 2030년 세계 매출액이 지금보다 2배(약 120조엔)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미래 핵심 산업이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자리 매김하고, 일본 내에서 반도체 생산이 이뤄질 수 있도록 대규모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중 대립으로 시작된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 등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대혼란을 거대 도약을 위한 기회라 보고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일본이 반도체 강국인 대만·미국과 손을 잡고 추격에 나서며 한국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한겨레> 자료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반도체 부활을 위한 일본의 도전을 상징하는 곳이 바로 이곳 티에스엠시의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이다. 이곳에선 12~28나노(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시스템 반도체를 월 5만5000장(300㎜ 웨이퍼 환산) 생산할 계획이다. 10나노 미만인 최첨단 반도체는 아니지만, 일본 내 수요를 만족하는 반도체의 국내 생산이 가능해진다. 지금까진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가 만드는 40나노가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가장 성능 좋은 반도체였다.

구마모토 역시 들썩이고 있다. 우루시마 히데오 지방경제종합연구소 주임연구원은 “2016년 4월 구마모토 대지진 이후 지역에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번 공장 유치는 지역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우루시마 연구원은 “구마모토현 총생산이 6조엔 정도인데, 티에스엠시 공장 투자비가 1조엔이 넘는다”며 “현내 반도체 관련 업체가 100곳 이상이다. 이 공장이 현에 몰고 올 경제적 파급효과가 10년 동안 4조3000억엔이라는 추계도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일자리도 크게 늘어난다. 새 공장엔 대만 티에스엠시로부터 파견되는 기술자 320여명, 소니그룹 200명, 신규·경력 채용 700명 등 1700여명이 일하게 된다. 연관 업계까지 합쳐 현내에 7500여명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구마모토대학은 이를 위해 지난해 4월 ‘반도체연구교육센터’를 만들었다. 내년에는 반도체 제조와 공정 관리 등을 가르치는 학부도 새로 개설한다. 대학 내에 45년 만에 생기는 새 학부다. 아오야기 마사히로 구마모토대 반도체연구교육센터장은 “티에스엠시 공장 유치는 반도체 관련 우수한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세계 최고 기업에서 일을 하며 최신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생산의 10%를 차지해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렸던 규슈 전체도 꿈틀거리고 있다. 소니·교세라·미쓰비시전기·도쿄일렉트론·다이요닛산 등 다른 반도체 관련 기업들도 설비를 늘리거나 공장 확장을 준비 중이다. 소재·부품·장비 등 연관 업체가 많은 반도체 산업의 힘이다. 티에스엠시는 일본에서 두번째 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왼쪽 둘째)과 다리오 길 아이비엠(IBM) 수석부사장(오른쪽 둘째)이 지난달 도쿄에서 최첨단 반도체 개발 협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왼쪽 둘째)과 다리오 길 아이비엠(IBM) 수석부사장(오른쪽 둘째)이 지난달 도쿄에서 최첨단 반도체 개발 협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슈퍼컴퓨터나 인공지능(AI) 등에 쓰이는 최첨단 반도체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도요타·엔티티 등 일본을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 8곳이 뭉쳐 지난해 11월 반도체 양산회사인 ‘라피더스’(라틴어로 빠르다는 뜻)를 설립했다. 기업들이 70억엔을 출자했고, 일본 정부가 700억엔(약 6730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미국 아이티(IT) 대기업인 아이비엠(IBM)은 라피더스와 함께 2나노로 상징되는 최첨단 반도체 공동 연구뿐만 아니라 기술자 육성과 판매처 개척 등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라피더스는 2025년 2나노 시험생산에 이어 2027년께 본격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아오야기 센터장은 “일본 내 반도체 생산 체제가 약화되면 지금 잘나가는 소재·부품·장치 분야의 경쟁력도 유지하기 힘들다. 잃어버린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위해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마모토/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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