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탱크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 오염수. AP 연합뉴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올여름 방류한다는 일본 정부의 계획에 대해 태평양 섬나라들은 ‘연기’를 요구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한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로 방관하는 모습이다. 이 틈을 타 일본은 주요 7개국(G7) 회의 등을 활용해 우호적인 국제 여론을 형성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이 지역 18개국이 모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을 중심으로 지난해 3월 핵물리학·해양학·생물학 등 각 분야 국제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인 자문단을 꾸렸다. 포럼의 회원국 중 하나인 마셜제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니터링팀(11개국)에 참여하고 있지만, 국민의 삶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문제인 만큼 자체 자문기구를 만들어 ‘이중 검증’에 나선 것이다.
포럼 전문가들은 일본을 상대로 △자료 요청 △화상 토론 △원전 시찰 등을 통해 오염수 방류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 결과 이들이 내린 최종 결론은 ‘방류 연기’였다. 헨리 푸나 포럼 사무총장은 2월 누리집에 영어·일본어로 공개한 일본의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입장문에서 “모든 관련자들이 과학적 방법을 통해 오염수 바다 방류의 안전성을 입증할 때까지 시행돼서는 안 된다. 우리 지역의 단호한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오염수 방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일본이 제공한 데이터의 질과 양이 불충분해 바다 방류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오염수 탱크의 복잡성·거대함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진행된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 검사만으로는 안전성을 확인할 만한 충분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오염수 탱크 가운데 극히 일부만 샘플로 추출돼 검사됐고, 방류로 인한 생태학적 영향이나 생물 농축에 대한 고찰이 현저하게 결여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일본이 추진하는 오염수 방류 계획을 승인한 국제원자력기구의 6일 ‘중간보고서’엔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들이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일본 정부가 2021년 4월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결정하자, 미국과 함께 즉각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 역시 오염수 방류로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는 국가 중 하나지만, 대응은 상당히 미온적이다. 특히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을 뿐, 오염수 방류가 코앞으로 다가온 현시점까지도 똑 부러진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올해 2월 피지에서 태평양의 18개 국가·지역이 참여하는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개최됐다. 태평양도서국포럼 누리집 갈무리
한국은 앞선 2019년 4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처가 부당하다며 일본 정부가 제기한 세계무역기구(WTO) 소송에서 ‘역전 승소’를 거뒀다. 일본은 당시에도 과학적 수치를 내세우며 한국의 조처가 부당하다고 주장해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 사고 뒤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 일본의 앞바다가 ‘잠재적 위험’이라고 주장하며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위험요소를 최대한 낮춰야 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는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윤 정부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면,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을 막아온 정부 정책과 4년 전 ‘역전 승소’의 성과까지 흔들리게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오염수 방류의 가장 큰 반대자로 떠오른 태평양 섬나라들을 집중 설득하면서 주요 7개국을 상대로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15~16일 삿포로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기후·에너지·환경장관 회의’ 공동성명에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와 협력해 (오염수) 방류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를 집어넣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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