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지사. 도쿄/AFP 연합뉴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는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이후 7년째로,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군·경찰 등이 가담한 조선인 학살 자체를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도쿄신문은 17일 도쿄도가 다음달 1일 도쿄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개최되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행사와 관련해 고이케 지사의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주최자 쪽 요구에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일조협회’ 등 일본 시민단체는 1974년부터 해마다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군대·경찰·자경단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를 위해 추도식을 열고 있다. 행사를 주최하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전 실행위원회’는 지난달 31일 도쿄도를 찾아 “올해는 간토대지진 100년이 되는 해다. 과거로부터 배워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추도문 송부를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도쿄도는 “도지사가 간토대지진으로 희생된 모든 분들을 위한 대법요에 참석해 애도를 표하고 있어 개별 행사에 대한 송부는 삼가겠다”고 거부했다.
미야가와 야스히코 실행위원장은 도쿄신문에 “유감이다. 지사는 조선인 학살의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극우 정치인으로 꼽히는 이시하라 신타로를 비롯해 이노세 나오키, 마스조에 요이치 등 2006년 이후 역대 도쿄도지사들은 추도문을 보내왔다. 조선인 학살은 자연재해로 숨진 이들과 성격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고이케 지사도 취임 첫해인 2016년 추도문을 보냈지만, 이듬해인 2017년부터 갑자기 송부를 중단했다.
고이케 지사의 이런 대응은 ‘조선인 학살’을 왜곡하는 극우 세력의 역사 인식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극우단체들은 간토대지진의 조선인 피해자 수가 부풀려졌고, 학살도 당시 조선인들이 일으킨 폭동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이케 지사는 지난 2월 도쿄도의회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무엇이 명백한 사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가 연구해 밝혀야 할 일”이라며 학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고이케 지사는 추도문 송부를 중단하기 시작한 2017년 3월 도의회에서도 추도문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바 있다. 자민당 소속 도의원이 “추도비에 적힌 ‘조선인 희생자 수 6천여명’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공격하자, 고이케 지사는 “관례적으로 추도문을 보내왔지만, 앞으로는 내용을 살펴본 뒤 추도문을 발표할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전 실행위원회’는 2022년 9월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99주기 추도식을 열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 발생한 규모 7.9의 대규모 재해로 10만5천여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다. 당시 불안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과 군대, 자경단이 조선인, 중국인,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을 학살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가 사건을 은폐하면서 조선인 희생자 수나 원인 등이 정확히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일본 내각부 중앙방재회의는 2008년 국가 기관에선 처음으로 학살 사건을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당시 인위적인 살상행위가 일어났다. 희생자의 정확한 수는 파악할 수 없지만 지진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의 1~수%에 해당한다. 살상 대상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희생자 수를 수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시 독립신문은 조선인 희생자를 6661명으로 보도했고, 일본의 저명한 학자인 야마다 쇼지 릿쿄대학 명예교수는 기록 등을 근거로 6천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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