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사진 왼쪽) 일본 총리는 3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약 1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총리 관저 누리집
일본과 필리핀이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안보협력을 ‘준동맹’ 수준으로 격상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4일 필리핀 의회 연설에서 중국을 겨냥해 “법의 지배에 근거하는 국제 질서가 중대한 위기에 노출됐다. 동맹국·우호국의 중층적 협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필리핀은 일본에 둘도 없는 파트너다. 양국은 최근 모든 수준에서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총리가 필리핀 의회에서 연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시다 총리는 특히 안보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필리핀의 안보 능력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며 전날 이뤄진 양국 정상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기시다 총리는 3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약 1시간 동안 만나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우선 필리핀에 총 6억엔(약 54억원) 상당의 연안 감시 레이더 5기를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4월 신설한 우호국에 방위 장비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부 안보능력강화 지원’(OSA) 제도의 첫 적용 국가로 필리핀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별개로 2020년 필리핀과 ‘경계관제 레이더’ 4기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체결해 지난달 1기를 납품했다. 나머지 3기는 2025년까지 납품할 예정이다.
우호국의 안보 능력을 높여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필리핀은 일본이 생각하는 ‘시레인’(전략 물자 해상 수송로)에 위치한 나라이며, 중국과 남중국해 섬들에 대해서 영유권 분쟁이 있는 국가다. 필리핀도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2016년 6월~2022년 6월) 시절엔 대중 관계를 중시하는 ‘균형 외교’를 펼쳐왔으나, 지난해 6월 집권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필리핀 군사기자 4곳을 추가로 미군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일본과 필리핀 양국 정상은 상대국 군대와 공동훈련을 쉽게 하는 ‘원활화 협정’(RAA) 체결을 위해 교섭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영국과 이 협정을 맺었고,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이 첫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요미우리신문에 “이번 정상 외교를 통해 필리핀과 관계가 ‘준동맹’ 수준으로 격상됐다”고 평가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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