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일본

일본인 뼛속까지 ‘지진·핵 악몽’

등록 2011-03-13 20:19

일본인들의 국민성 가장 깊숙한 곳에는 늘 공포심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인들이 자신의 분수를 너무도 잘 알고, 열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숙명에 좀체 거스르려 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공포의 진원지가 바로 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로 대표되는 자연재해다.

태평양전쟁 말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는 또다른 공포를 일본인들의 가슴 밑바닥에 새겼다. 핵폭탄과 방사능 오염은 60년 이상 세계 유일의 피폭국가 일본 사람들의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대지진은 일본인들의 이 두가지 원천적 공포를 한꺼번에 불질렀다. 대지진과 그에 따른 원자력발전소의 폭발과 방사능 누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한 것이다. 초대형 참사 앞에서 일본인들이 아우성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체념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거대한 공포에 짓눌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그동안 ‘30년 주기설’이니 ‘150년 주기설’이니 하면서 지진과 쓰나미 대비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지진 예측 기술은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또 이번 최대 지진에 앞서 9일 규모 7.3, 10일 6.8의 ‘사전 지진’이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예측을 하지 못한 채 동북부 해안지방이 초토화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일본인들은 허탈과 무기력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지진예측연락회의 한 간부는 12일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전문가들도 규모 9 안팎의 거대 지진은 일본 부근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해왔다”며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강진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모의 단위가 하나 낮으면 발생 빈도가 10배 늘어난다며, 규모 7 정도로는 이번 같은 초대형 지진의 전조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예측 불가에 기존 사고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의 지진으로 일본인들의 공포심은 한결 짙어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과 주민들의 피폭은 원폭 공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핵폭탄 투하나 옛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대규모 피해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원자로의 노심이 녹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노심이 더 녹으면 새어 나온 핵연료가 급속한 반응을 거쳐 폭발해 원자폭탄이 터질 때와 마찬가지의 파괴력을 낳는다.

다행히 그런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전 단계까지 사태가 진행됐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심각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당국이 생길 수 없는 일이라고 장담하던 ‘지진에 따른 전기 공급 차단, 비상 발전기 작동 불능, 냉각수 공급 중단, 노심 융해’가 현실로 나타났다. 실제 피폭자들도 발생했다. 60년 이전의 원폭 악몽을 잊을 수 없는 이유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이스라엘편’ 트럼프 “15일 정오까지 인질 석방 안 하면 가자 휴전 취소” 1.

‘이스라엘편’ 트럼프 “15일 정오까지 인질 석방 안 하면 가자 휴전 취소”

남자 컬링 4강 진출…여자 대표팀은 중국 꺾고 5연승 순항 2.

남자 컬링 4강 진출…여자 대표팀은 중국 꺾고 5연승 순항

트럼프, 한국 등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시행…“자동차·반도체도 검토” 3.

트럼프, 한국 등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시행…“자동차·반도체도 검토”

‘2주째 지진’ 산토리니 주민 대탈출 사태 [유레카] 4.

‘2주째 지진’ 산토리니 주민 대탈출 사태 [유레카]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