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공식집계 6900명 넘어 연락두절 수만명
인간기술 허망함과 좌절않는 위대함 함께 보여줘
인간기술 허망함과 좌절않는 위대함 함께 보여줘
18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도호쿠 지역의 피난소 2176곳과 도쿄의 중·참의원 회의장 등에서 묵도가 시작됐다. <엔에이치케이>(NHK)가 비춘 이와테현 야마다마치의 한 피난소에선 나이든 이들이 개어놓은 이불 사이로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고 일어서 손을 모으는 모습이 보였다.
1주일 전 이 시간, 규모 9.0의 대지진과 10m에 달한 지진해일(쓰나미)은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을 말 그대로 삼켜버렸다. 일본 국토지리원의 자료를 보면, 해일은 해안에서 6㎞까지 밀고 들어왔고 침수 면적은 서울 넓이의 3분의 2에 달하는 최소 400㎢에 이른다.
‘그날’로부터 1주일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피해 전모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청이 집계한 사망자 수는 6911명으로 1995년 한신대지진(사망 6434명)을 넘어서 ‘전후 일본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되게 됐다. 가족 등이 신고한 공식 행방불명자는 1만316명이지만 연락 두절은 수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2만6000명이 구조됐지만 아직도 접근이 어려운 곳에 고립된 이가 1만6000여명이다.
무엇보다 이번 재앙은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사고 이후 인류로 하여금 문명이 만들어낸 원전의 공포 앞에 다시금 맞닥뜨리도록 했다. 11일 저녁 일본 정부의 원자력 긴급사태 선언 이후, 피난령은 5㎞에서 20㎞, 30㎞로 계속 늘었고 한때 수도권 도쿄의 방사능 수치마저 올라갔다. 특히 낡은 시설을 방치했던 소련이 아니라, 최고 선진국인 일본에서 일어난 이번 사고는 원전이 지진과 같은 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새삼 깨닫게 했고, 각국에 원전정책 재검토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수습에 참여했던 로리 안데프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국제원자력기구가 체르노빌 참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며 원전 감독기능의 강화를 주장했다. 또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일본에서 실시된 계획정전과 물류 중단 등이 불러온 파장은,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아진 현대사회가 순식간에 무력해질 수도 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 재앙은 또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도 보여줬다. 피난소에서 자신에게 남은 고작 며칠치 혈압약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대화재가 났던 미야기현 게센누마의 한 여성은 “여러분이 격려해줘 힘껏 살아가려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날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의 초등학교들에선 구조 헬기의 굉음이 울리는 가운데 졸업식이 열렸다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폐허 속에서도 새출발은 시작된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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