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일본

피폭량 맞춰 쓰고 버려지는 원전노동자

등록 2012-03-06 19:31수정 2012-03-06 23:26

1년 전 지진해일(쓰나미)가 휩쓸고 간 이곳에 하얀 눈이 내렸다. 지난달 27일 일본 미야기현 나토리시의 히요리야마 신사에 서 있는 3·11 동일본대지진 희생자 추모비가 아직 정비되지 않은 황량한 들판을 등지고 쓸쓸하게 서 있다.  나토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년 전 지진해일(쓰나미)가 휩쓸고 간 이곳에 하얀 눈이 내렸다. 지난달 27일 일본 미야기현 나토리시의 히요리야마 신사에 서 있는 3·11 동일본대지진 희생자 추모비가 아직 정비되지 않은 황량한 들판을 등지고 쓸쓸하게 서 있다. 나토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후쿠시마 끝나지 않은 재앙
➊ 방사능은 현재진행형
일당 14만원 받는 비정규직
피폭기준 넘으면 작업장 바꿔
병 걸려도 책임소재 물타기
“익숙해지나 싶다가도 측정기에서 울리는 경고음을 들으면 다시 무서워져요.”

지난 2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만난 한 30대 원전노동자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는 시내 호텔에 묵으며 회사가 제공하는 버스로 제1원전까지 출퇴근하면서 잔해 제거 작업에 참가하고 있다. 그가 원전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두달 전이었다. 누가 봐도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지만, 그가 받는 일당은 1만엔(약 14만원)으로 그리 많지 않다. 그는 “3·11 대지진으로 미야기현에 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며 “일자리를 구할 곳이 원전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은 그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하는 줄을 아직 모른다.

원전노동자 문제 전문가인 와타나베 히로유키 이와키시의원(일본공산당)의 소개로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 응한 다른 원전노동자는 “이곳저곳 떠돌며 원전에서만 벌써 10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원전사고 피난구역인 오쿠마마치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자연스레 원전노동자가 됐다. 그런 그도 방사능은 무섭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방사선량이 시간당 수백밀리시버트에 이르는 곳도 있습니다. 일하겠다고 왔다가 현장에 접근을 못하고 겁나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30대인데 몇달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도 있지요.”

원전 베테랑인 그가 받는 일당도 1만엔이다. 원전 사고 전에 받던 액수와 똑같다. 도쿄전력이 책정하고 있는 노동자 일당은 5만엔이 넘지만, 많게는 5~6단계의 하청·재하청을 거치면서 6500~1만2000엔까지 떨어진다.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80% 이상이 하청업체나 파견 전문업체에 속한 비정규직이다. 이런 비율은 원전 사고 이전이나 이후나 별로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에 의존해 굴러가는 원전산업의 현주소다. 그는 “원전사고 초기 몇달간 인력이 부족할 때는 하루 2만엔씩 위험수당을 받았지만, 지금은 위험수당을 받는 노동자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부터 약 4개월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한 그는 지금은 제2원전으로 옮겨 일한다. 피폭량 때문에 불가피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과정에서 허용된 최대 피폭량은 250밀리시버트다. 다른 원전에서도 일을 계속하려면 ‘5년간 100밀리시버트, 1년에 50밀리시버트 이상 피폭’하면 안 된다. 와타나베 시의원은 “조사해보니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누적 피폭량이 20~40밀리시버트인 비숙련 노동자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를 이렇게 바꿔치기하는 데는 훗날 암 등 질병이 발생해도 책임소재를 가리기 어렵게 하자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선 요즘 전기, 배관, 건축·잔해제거 등 크게 세 분야에서 하루 3000명이 넘게 일한다. 녹아내린 핵연료를 원자로에서 꺼내 사고를 완전 수습하기까지는 앞으로도 십년 넘게 걸릴 전망이다. 원전은 그때까지 ‘잠깐 쓰고 버리는’ 저선량 피폭자 수만명을 더 양산하게 돼 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노동자 가운데 사고 수습 과정에서 100밀리시버트 이상 피폭한 사람은 지금까지 167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저선량 피폭의 실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은 “작업 과정에서 얻은 어떤 형태의 정보에 대해서도 기밀을 유지하며, 보도기관의 취재에는 일절 응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고용계약서에 서명했다. 어느 것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처지다.


1986년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는 모두 60만~80만명이 사고 처리에 동원됐다. 러시아 라잔주에서 사고 초기 단계에 동원된 작업원 856명은 피폭량이 평균 203밀리시버트였는데, 그 가운데 6.4%인 55명이 1993년까지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키/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김재호 판사 “검찰이 기소하면 법원서 알아서 할것” 말했다
“님들아, 이번 테러는 제가 주도하겠삼” ‘초딩’ 여성부 공격
김재철의 보복…‘북극의 눈물’ 팀 등 직원 법인카드 감사
거미줄이 바이올린현으로
문재인 오전에만 5백여명과 악수 “4kg 빠졌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어민 목숨 앗아간 독도 폭격, 일본은 영유권을 주장했다 1.

어민 목숨 앗아간 독도 폭격, 일본은 영유권을 주장했다

“재앙이다”…바다가 27년째 땅으로 뱉어낸 용·문어 레고의 경고 2.

“재앙이다”…바다가 27년째 땅으로 뱉어낸 용·문어 레고의 경고

“이건 학살” 헤즈볼라 연설 뒤 전투기 띄운 이스라엘…미 “위험 상황” 3.

“이건 학살” 헤즈볼라 연설 뒤 전투기 띄운 이스라엘…미 “위험 상황”

[영상] 화웨이 ‘3단 병풍폰’ 펼쳐보니 4.

[영상] 화웨이 ‘3단 병풍폰’ 펼쳐보니

해리스-트럼프 전국 지지율 47% ‘동률’…경합주 박빙 승부 5.

해리스-트럼프 전국 지지율 47% ‘동률’…경합주 박빙 승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