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창피한 ‘판단 미스’였다.
사건의 발단은 사흘 전인 11일 <아사히신문>의 보도다. 신문은 이날 스포츠면(23면)에서 8일 사이타마를 홈으로 하는 제이(J)리그 축구팀 우라와 레드의 서포터들이 홈구장 응원석 출입구에 ‘일본인만 입장’(Japanese Only)이라는 펼침막을 내건 일은 “인종차별적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젤까.’ 이 정도 안이한 판단으로 기사를 그냥 흘려보낸 것 같다.
예상 밖으로 일본 사회의 대응이 기민했다. 각 언론에서 이 펼침막을 비난하는 기사가 이어지더니 13일 후치다 게이조 구단 사장이 고개를 숙여 사죄했고, 제이리그는 구단에 23일 홈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르라는 징계를 내렸다. 제이리그에서 무관중 경기가 치러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매우 무거운 징계임이 틀림없다. 일본 사회의 인권 의식과 시민 사회의 성숙한 대응을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득 펼침막의 문구가 ‘조선인 출입 금지’라고 적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피해의식이 아니다. 모든 신문이 우라와 레드를 비난하던 14일 <도쿄신문>은 1면에서 도쿄도 도시마구가 “조선인을 죽이자”는 반한시위(헤이트 스피치)를 주도하는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공회당(구민회관) 사용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사를 보니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단체의 회관 사용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구에선 “집회의 자유도 중요하다”며 결국 허가를 내줬다고 한다.
인종차별은 범죄라 이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제이리그의 결정을 환영한다. 그러나 사회의 다른 한켠에선 노골적인 인종차별 집회가 허용되고, 이를 금지하자는 이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들이댄다. 정부는 한술 더 떠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며 사회의 차별의식을 조장하고, 틈만 나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국가의 책임을 부인한다.
모든 차별은 구체적이어서 축구장에서 ‘차별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만으론 역부족이다. 그래서 도쿄 도서관에서 <안네의 일기>가 훼손된 사건에 분노하는 사회가 위안부와 난징대학살을 부인하는 발언은 용인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축구장의 일본과 재특회의 일본. 어느 쪽이 일본 사회의 진짜 모습일까. 어느 게 진짜 모습이어야 하는가.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연재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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