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전략 공유가 인식 공유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일본 내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사진)는 지난 11일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과 관련한 한-일 간의 대립 해소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인식 차이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한-일이 외교 전략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1970년대 한국에 유학한 이후 오랫동안 한반도 연구에 천착해온 오코노기 명예교수는 “본질을 둘러싸고 논쟁하는 것은 문제를 더 어렵게 할 뿐”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지난해 12월24일 중국 청두 한-일 정상회담)이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접근이라고 했다.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우려가 많은데, 현재 한-일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최악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1973년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납치 사건’ 때도 일-한(이하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지만, 1965년 한-일 조약 체제 자체가 문제시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도 심각해진 적이 있지만, 처음부터 (위안부 피해 문제는 한-일 조약 부속 협정인) 청구권협정 틀 밖에 있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정권한테는 박근혜 정권과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무효화된 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 때문에 대한국 수출 엄격화(수출규제)라는 이례적 강경 수단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현금화가 실현되면 한-일 관계에는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는가?
“한국 정부는 ‘삼권 분립’을 들어 행정부 불개입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사법부와 행정부가 연계해 한-일 청구권협정을 형해화하고 있다고 경계한다. ‘65년 체제’의 중심이 무너지기 때문에, (주한 일본) 대사 소환을 포함한 여러 대항 수단을 (일본 정부가) 상정하고 있다. 한국 쪽도 대항 조처를 취할 것이고,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행할 것이다.”
―수출규제와 강제동원 문제의 동시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두 문제는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 외의 방법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한국 쪽이 일본 기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 형태로 징용공 문제를 처리하면, 일본 쪽도 대한국 수출 관리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국 청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와 한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해법을 찾는 일이다. 본질을 둘러싸고 논쟁하는 것은 문제를 더 어렵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올바른 접근이다. 미국에서 개최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나 서울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의를 기회로 두 사람이 이를 구체화했으면 좋겠다. 지금이야말로 지혜를 모을 때다.”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일 합의로 재단을 만든 뒤 피해자를 포괄적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합의가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한·일 쌍방이 자신들의 문제를 처리해야만 한다. 일본 기업이 법적으로 자금 제공을 강제당하는 사태는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재단을 조직하고 일본 기업과 국민이 인도적 구제라는 관점에서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일본 정부도 막을 수 없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법 아닐까.”
―한국과 일본은 대북한·대중국 정책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어,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때와 같은 협력 기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게 경직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냉전 종결 뒤 국제 협조와 역사 화해의 조류를 반영했다. 박근혜·문재인 정권의 대일 외교는 중국의 대국화라는 동아시아 구조 변경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정세도 다시 급속히 변하고 있다. 지나치게 대국화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은 체제경쟁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이 과거 대중국 관여 정책의 실패를 명확히 인정하고, 반도체와 정보산업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이나 시장의 미-중 디커플링(분단) 정책을 강화하면, 일본과 한국은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미들 파워’로서 전략 공유야말로 한·일 양국이 가야 할 길이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에 하고 싶은 제언이 있다면?
“현재 일본과 한국은 많은 기본적 외교 목표와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웃 나라를 병합한다는 20세기 전반의 이상하고도 부적절한 역사의 기억이 여전히 한-일 관계를 갈라놓고 있다. 한국의 친구들은 ‘역사 인식’을 공유하지 않으면, ‘외교 전략 공유’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다. 한-일의 장기적 ‘전략 공유’가 상호 간 신뢰를 조성해 ‘인식 공유’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양국 정부는 한 세대 뒤 국민을 위해 ‘전략 공유’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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