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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위안부 강제’ 지운 교과서 모든 일본 고교생 배운다

등록 2021-03-30 17:31수정 2021-03-31 07:47

내년부터 필수 일본 ‘역사’ 교과서
12종 중 단 1종만 강제성 기술
역사 직시 ‘고노 담화’ 약속 깨
외교부, 일 공사 불러 강력 항의
야마카와출판이 만든 ‘역사총합(종합)’ 교과서 1종이 유일하게 ‘위안부’의 강제성을 언급했다. 이 교과서는 각주(위치는 교과서 오른쪽)로 “각지의 전장에서는 위안소가 건설돼 일본과 조선, 대만 점령지의 여성이 위안부로 모집됐다. 강제됐거나(로 오기도 하고) 속아서 연행되기도 한 예도 있다”고 서술했다.
야마카와출판이 만든 ‘역사총합(종합)’ 교과서 1종이 유일하게 ‘위안부’의 강제성을 언급했다. 이 교과서는 각주(위치는 교과서 오른쪽)로 “각지의 전장에서는 위안소가 건설돼 일본과 조선, 대만 점령지의 여성이 위안부로 모집됐다. 강제됐거나(로 오기도 하고) 속아서 연행되기도 한 예도 있다”고 서술했다.
내년부터 일본의 모든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역사 교과서 12종 중 단 한 곳만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서술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이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고 선언한 ‘고노 담화’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 외교부는 이날 오후 주한 일본대사관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하고, 교육부도 성명을 내어 교과서 내용을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22년부터 4년 동안 사용할 고등학교 교과서 역사총합(종합)·공공·지도책 등 296종의 검정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특히 세계사와 일본사를 합쳐 근현대사 부분을 강화한 ‘역사총합’ 수업이 내년부터 필수과목이 되면서 통합 역사 교과서도 첫 검정을 거쳤다. 그동안 일본사는 선택과목이었는데, 앞으로 일본의 모든 고등학생은 역사총합 교과서로 역사를 배워야 한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가 새로 검정을 통과한 ‘역사총합’ 교과서 12종(출판사 7곳)을 분석해 보니, ‘위안부’를 언급한 곳은 8종(66.7%)으로 조사됐다. 본문에 3곳, 각주로 1곳, 박스를 쳐서 참고자료 형태로 소개한 곳이 4곳이다. 분량은 대체로 한두 문장으로 서술한 곳이 많으며 일본 외무성 자료를 그대로 옮겨놓은 교과서가 세 문장으로 가장 길다.

이 가운데 야마카와출판이 만든 역사총합 교과서 1종이 유일하게 ‘위안부’의 강제성을 언급했다. 이 교과서는 각주(위치는 교과서 오른쪽)로 “각지의 전장에서는 위안소가 건설돼 일본과 조선, 대만 점령지의 여성이 위안부로 모집됐다. 강제됐거나(로 오기도 하고) 속아서 연행되기도 한 예도 있다”고 서술했다. 이 출판사는 역사총합을 3종 냈는데 나머지 2종에는 강제성을 빼거나 ‘위안부’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나머지 교과서들은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전지에 보내졌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전투 부분에서) 130여곳의 군 위안소에서는 적어도 160명의 조선인 ‘위안부’가 있었다고 한다” 등 간단한 사실관계를 적고, “강제”라는 표현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 실태에 대한 설명도 없이 전후 보상 문제만 언급한 교과서도 있다. “아시아여성기금이 민간기관으로 한국, 네덜란드 등의 위안부에 대해 부분적으로 보상을 행했다”거나 “소위 종군위안부 등 미해결 문제는 많다”고 실렸다. 특히 짓쿄출판은 올해까지 사용하는 일본사 교과서에는 ‘고노 담화’를 소개하는 등 ‘위안부’ 문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지만 역사총합에서는 한 줄에 그치는 등 오히려 개악됐다. 역사총합만 봤을 때 ‘위안부’ 문제가 ‘전시 성폭력’이라는 최소한의 사실도 알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다.

역사총합 교과서들은 1993년 4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고노 담화’의 약속과도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노 담화에는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의 참혹한 것이었다”며 ‘위안부’의 동원과 생활에서 있었던 강제성을 분명히 했다. 또한 고노 담화에는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 없이”, “역사 교육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표명한다”고 돼 있다.

일부 역사총합 교과서는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서술하기도 했다. 야마카와출판, 다이이치학습사의 교과서에서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을 다루면서 제목을 ‘일본의 아시아 진출’로 표기했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1982년 동북아시아에서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용어가 ‘진출’이란 표현”이라며 “일본의 역사 인식이 30년 전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부터 일본의 모든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역사교과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부터 일본의 모든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역사교과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은 사회과 3과목 30종 교과서에 모두 실렸다. 지리총합(6종), 공공(12종), 역사총합 일부엔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 “한국의 (불법) 점거”라는 내용이 담겼다. 역사총합 대다수 교과서엔 일본 정부가 1905년 1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각의(내각회의) 결정을 내렸다고 서술했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때 일본 자경단과 경찰 등이 저지른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도 ‘역사총합’ 교과서엔 애매하게 서술돼 있다. 일본 정부의 책임을 알 수 없게 표현한다거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차별의식 등 학살 배경을 설명하지 않은 교과서도 다수였다. 희생자 규모도 ‘많이’ 또는 ‘다수’로 표현하면서 학살이란 용어 대신 “살해·살상”으로 표기해 몇몇의 일탈행위로 인한 사건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 외교부는 이날 오후 소마 총괄공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정부는 앞서 공개한 성명에서 일본 정부가 “자국 중심의 역사관에 따라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은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항의 성명을 내어 “한-일 관계의 얽힌 매듭을 푸는 첫걸음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된다”며 “일본 정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왜곡된 교과서 내용을 스스로 시정하라”라고 요구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자국사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인식하려는 노력이 뚜렷하고, 이런 차원에서 역사총합에 기대가 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내용이 공개된 역사총합 교과서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범죄를 희석시키고 있다”며 “(한·중·일이) 적극적 대화를 통해 공동의 인식을 확인하고, 확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길윤형 이유진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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