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투어 콘서트. 내가 꿈꾸는 나라 제공
한겨레21
[레드 기획] 무거운 옷 벗어던진 출판기념회, 강연회, 정치투어… 춤·노래와 결합해 친근하고 흥겹게 세상을 논하다
지난 8월30일 저녁 서울 홍익대 앞 가톨릭청년회관 1층 카페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테이블마다 수도복을 입은 사람들과 어린 아이, 나이 지긋한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았다. 카페에 모인 사람이 100명이 넘어갈 즈음 작은 콘서트가 시작됐다. ‘평화를 말하다, 생명을 노래하다’는 주제를 내걸고 사형제 폐지를 기원하는 생명·이야기 콘서트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도 들썩였다. 민주진보통합추진기구 ‘혁신과 통합’이 연 정치투어 콘서트 ‘당신들이 꿈꾸는 나라’에 청중 450명이 모였다. 정치 콘서트지만 구호는 사라지고 이야기와 노래꽃이 피어났다.
거리 50cm, 객석 가까이 다가앉아
지금은 콘서트 시대다. 출판기념회, 강연회, 각종 단체의 발기대회까지 식순은 사라지고 콘서트가 되며 말랑해졌다. 앞서 8월26일 부산에서 열린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에선 노무현재단 양정철 운영위원,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성공회대 탁현민 겸임교수 등이 토크쇼처럼 ‘노무현의 운명과 문재인의 운명’이란 무거운 주제를 좀더 친근하게 풀어내려 했다. 여기에 인디밴드 ‘일단은 준석이들’이 공연으로 결합했다.
이야기 콘서트가 노리는 것은 게릴라전에 가깝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사형제 폐지 기원 콘서트’는 전년과 달리 몸집을 줄이고 횟수를 늘렸다. 8월30일 콘서트 자리에서 객석과 무대의 거리는 50cm다. 무대에선 청중의 눈이 반짝이고 객석에선 출연자의 표정이 생생한 거리다. 사랑방 분위기다. 자연 오가는 이야기도 한결 어깨힘을 빼고 편안해졌다. 이날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소설가 공지영씨는 오랫동안 사형수들을 취재하느라 구치소를 드나든 경험을 전했다. 그런 그에게도 카페에서 사형제 폐지를 이야기하는 경험은 색달랐다. “오랫동안 사형제 폐지운동에 동참하며 400~500명을 앉혀놓고 강연을 해본 일도 있고 길거리 무대에서 외쳐본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무릎을 맞대고 사형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사형수를 멀리서 보는 것과 구치소 냄새를 맡으며 사형수를 면회하러 들어가는 것, 사형수와 차를 한잔 하는 것은 정말 다른 문제거든요.” 최근 창문까지 막혀버렸다는 깜깜한 구치소 풍경 이야기에 눅눅한 구치소 냄새가 전해진다. 50cm 거리의 힘이다.
카페에서 차를 한잔 하며 심각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법. “글을 쓸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정리하느냐” “정말 아이들 진로에 간섭하지 않느냐”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50분 정도 계속된 공씨의 강연은 태반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콘서트장을 찾은 한 고등학교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특목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가수 시와가 <길상사에서> <랄랄라> 등의 노래로 서정적인 울림을 전했고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 이지상이 <무지개> <철길>을 부르며 분위기를 북돋았다. 가수들도 노래만 부르지 않았다. 시와가 노래를 만들 때의 이야기, 이지상의 구치소 공연 이야기가 엮여 더 넓은 이야기가 됐다. 행사를 준비한 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폐지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옳은 것이냐는 무거운 물음을 좀더 자주, 일상적으로 이야기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사형을 주제로 글을 쓴 공지영 작가, 시위 현장에서 만나는 가수 등 무게감 있는 발언자들이 진정성은 담되 좀더 편하게 이야기했으면 했다. 사형제에 대해 늘 비장하게 옳은 이야기만 해왔는데 그런 한계를 이번에 좀 벗어났다”고 덧붙였다.
이야기가 노래를 만났을 때 노래는 선동보다 힘이 세다. ‘정치 콘서트’의 무거운 정치 담론들은 음악과 영상을 만나 한결 무게를 덜었다. 정치 콘서트에서 상영된 영상에 비친 촛불 광장을 돌아다니는 가수 한대수의 모습은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힘으로 통합 수권정당을 만들자”는 문재인의 연설, 대학생 김민호씨의 20대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남윤인순씨의 보편적으로 평등한 복지에 대한 요구 같은 이야기들 틈틈이 아이리시 프로젝트 그룹 ‘바드’의 연주가 이어졌다. 음악시장에서는 ‘나는 가수다’의 성공이 증명하듯 지나간 가요가 다시 돌아오는 추세지만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어내기엔 부족하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만나는 콘서트장에서는 어떤 음악이 그들을 엮어줄 수 있을까. ‘정치투어 콘서트’를 연출한 탁현민 교수는 “80년대 정치집회의 장을 움직인 노찾사, 꽃다지, 조국과 청춘 등은 그 시대를 담고 있는 노래를 불렀다. 지금 우리 시대의 삶을 담고 있는 음악은 무엇일까” 하고 되묻는다. 인디밴드부터 대중가수까지 다양하게 출연하는 최근의 이야기 콘서트는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수를 찾는 실험실일지 모른다. 탁 교수는 “아이리시 음악의 처연한 선율이 우리 정서와 닮아 있는데다 시민들의 회고, 결단, 선언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가사를 담은 음악보다는 아일랜드 연주 음악을 썼다”고 했다. 이야기 콘서트가 가수들의 콘서트와 다른 점은 그 안에 담긴 설득의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정치투어 콘서트’에 참여했던 한 20대 직장인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돼서 고맙다”는 편지를 남겼다. 콘서트를 주최한 ‘내가 꿈꾸는 나라’ 천준호 기획위원장은 “그동안 정치 행사라면 형식적인 행사에 사람을 동원하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콘서트라는 형식을 잘 이용해서 시민들이 정치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정치인들과 진솔하고 진정성 어린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이야기만 힘을 얻는 게 아니다. 매달 평화방송과 창작과비평사가 주최하는 북콘서트에서 노래하는 시와는 “텍스트와 교류하며 음악의 외연이 넓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제를 고민하게 되고 생명과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게 된다”고 했다. 홍대의 젊은 관객 외에도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가수 이지상씨는 매해 빠지지 않고 ‘사형제 폐지 기원 콘서트’에 참여해왔다. 1999년부터 정호승·김현승 등과 시노래 동인 ‘나팔꽃’ 활동도 해왔다. 시는 그의 음악을 통해 입체감을 얻고, 음악은 시를 통해 깊이감을 얻어왔다. 두 장르가 만나서 얻어지는 것이 많지만 나팔꽃 활동만이 꾸준했을 뿐 올해처럼 많은 공연에서 이야기와 노래가 합친 적은 없었단다. “종이 매체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종이 매체를 통해 얻었던 진득한 감동이 소리 매체를 통해 증폭된다”며 10년 넘게 ‘결합형 공연’을 지켜온 이유를 설명했다.
뒷담화 넘어 생산의 장으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사형제 폐지 기원 콘서트’는 9월30일과 10월30일에도 열린다. 9월에는 배우 김여진, 가수 백자와 시와가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한다. 10월에는 황대권 작가와 시와, 2인조 밴드 나무자전거가 노래와 이야기를 엮는다. ‘정치투어 콘서트’와 ‘문재인의 북콘서트’도 중요 정치 일정이 가까워지며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사람들이 이야기 콘서트를 찾는 것은 후퇴한 민주주의에 대해 할 말이 많기 때문이고,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서고, 무엇보다 스타급 멘토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크고 작은 콘서트들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입소문을 탄다. ‘사형제 폐지 기원 콘서트’는 블로그·카페·트위터에서 이벤트를 열고, 이곳저곳에 행사를 알렸다. 이때 출연자의 몫이 커진다. 김 사무국장은 “공지영 작가 트위터는 팔로어가 14만 명이다. 소셜네트워크 마케팅에선 특히 그런 점이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6월29일부터 전국을 돌며 열리고 있는 ‘청춘 콘서트’는 지금까지 열린 21회 동안 청중 2만7500명이 참여한 기록을 남겼다. ‘실업과 높은 등록금으로 우울한 청년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기획 의도가 통한 것은 안철수와 박경철, 법륜 스님 같은 대중적 멘토들의 힘이 컸다. 청년들은 열심히 물었다. “어려운 순간이 닥치면 당신들은 어떻게 했나” “진로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일자리가 없다, 어쩌면 좋겠느냐” 지금 청년들은 정치인 대신 멘토들에게 길을 묻는다. 탁현민 교수는 9월25일 서울에서 열릴 안철수·박경철의 ‘청춘 콘서트’ 마지막 회 연출을 맡았다. 강연 위주였던 이 콘서트는 마지막 공연만큼은 토크와 음악과 메시지가 주인공인 콘서트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진보 칼럼니스트자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인 김규항씨도 10월부터 이야기 콘서트 열풍에 동참한다. 두 달에 한 번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성미산 마을 극장에서 ‘고래 이야기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관람객 100명을 넘지 못하는 작은 공간이다. 정치적 의식 없이도 편안하게 들르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가는 자리를 구상한단다. 부디 그때까지 송경동 시인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자유롭게 되어서 첫 손님이 돼주길 기도하고 있다. 김규항·최정우씨가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 ‘레프트밴드’가 산울림·김광석 등의 노래를 연주하고 부를 예정이다. 밴드 레나타 수이사이드의 최정우씨가 기타와 보컬을 맡고 김규항씨가 퍼커션을 연주하며 함께 노래한다. 김씨는 블로그에 “근래 이야기 콘서트, 북콘서트가 많이 생겼는데 ‘명박이 욕하기 쇼’를 넘어서는 걸 보기 어려운 건 아쉬운 일이다. 고래 콘서트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기운을 충전하는,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근본적 통찰과 참여한 사람들이 동지애로 충만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명박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을 넘어 현실에 대한 적확한 인식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무겁게 이야기할 건 아니고 고래 후원자들과 함께 일상적인 이야기를 급진적인 관점으로 나눌 것”이라고 했다.
처음 만나 동지가 되는 사람들
‘사형제 폐지 기원 콘서트’ 주최 쪽은 청중의 절반이 그동안 집회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고 전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이 모이는 자리만이 아니라 처음 만난 사람들이 동지가 되는 자리, 콘서트의 외연은 더 넓어질 수 있을까.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 사형제 폐지 기원 콘서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제공
이야기가 노래를 만났을 때 노래는 선동보다 힘이 세다. ‘정치 콘서트’의 무거운 정치 담론들은 음악과 영상을 만나 한결 무게를 덜었다. 정치 콘서트에서 상영된 영상에 비친 촛불 광장을 돌아다니는 가수 한대수의 모습은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힘으로 통합 수권정당을 만들자”는 문재인의 연설, 대학생 김민호씨의 20대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남윤인순씨의 보편적으로 평등한 복지에 대한 요구 같은 이야기들 틈틈이 아이리시 프로젝트 그룹 ‘바드’의 연주가 이어졌다. 음악시장에서는 ‘나는 가수다’의 성공이 증명하듯 지나간 가요가 다시 돌아오는 추세지만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어내기엔 부족하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만나는 콘서트장에서는 어떤 음악이 그들을 엮어줄 수 있을까. ‘정치투어 콘서트’를 연출한 탁현민 교수는 “80년대 정치집회의 장을 움직인 노찾사, 꽃다지, 조국과 청춘 등은 그 시대를 담고 있는 노래를 불렀다. 지금 우리 시대의 삶을 담고 있는 음악은 무엇일까” 하고 되묻는다. 인디밴드부터 대중가수까지 다양하게 출연하는 최근의 이야기 콘서트는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수를 찾는 실험실일지 모른다. 탁 교수는 “아이리시 음악의 처연한 선율이 우리 정서와 닮아 있는데다 시민들의 회고, 결단, 선언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가사를 담은 음악보다는 아일랜드 연주 음악을 썼다”고 했다. 이야기 콘서트가 가수들의 콘서트와 다른 점은 그 안에 담긴 설득의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정치투어 콘서트’에 참여했던 한 20대 직장인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돼서 고맙다”는 편지를 남겼다. 콘서트를 주최한 ‘내가 꿈꾸는 나라’ 천준호 기획위원장은 “그동안 정치 행사라면 형식적인 행사에 사람을 동원하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콘서트라는 형식을 잘 이용해서 시민들이 정치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정치인들과 진솔하고 진정성 어린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이야기만 힘을 얻는 게 아니다. 매달 평화방송과 창작과비평사가 주최하는 북콘서트에서 노래하는 시와는 “텍스트와 교류하며 음악의 외연이 넓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제를 고민하게 되고 생명과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게 된다”고 했다. 홍대의 젊은 관객 외에도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가수 이지상씨는 매해 빠지지 않고 ‘사형제 폐지 기원 콘서트’에 참여해왔다. 1999년부터 정호승·김현승 등과 시노래 동인 ‘나팔꽃’ 활동도 해왔다. 시는 그의 음악을 통해 입체감을 얻고, 음악은 시를 통해 깊이감을 얻어왔다. 두 장르가 만나서 얻어지는 것이 많지만 나팔꽃 활동만이 꾸준했을 뿐 올해처럼 많은 공연에서 이야기와 노래가 합친 적은 없었단다. “종이 매체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종이 매체를 통해 얻었던 진득한 감동이 소리 매체를 통해 증폭된다”며 10년 넘게 ‘결합형 공연’을 지켜온 이유를 설명했다.
» '사형제 폐지 기원회'는 매년 1회 대규모 공연으로 개최하던 것을 올해부터 4회로 나눠 작은 콘서트로 모습을 바꿨다. 지난 8월30일 열린 '사형제 폐지 기원 콘서트'를 찾은 사람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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