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요양보호사 배연희씨가, 휠체어에 의지해 투표하러 가는 보호대상자를 돕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한겨레21
[2012 만인보] 모멸과 박봉에 맞서 요양보호사의 권익신장 애쓰는 배연희씨… 지적장애 아들의 성장 지켜보는 게 낙인 어느 어머니의 노래
참담했다. 그녀를 위로할 말이 내겐 없었다. 하긴 세상엔 온전한 의미의 위로가 없다고, 각자의 고난만 있을 뿐이라고 믿는 내가 어떻게 그녀를 위로할 수 있을까. 그 누구든 남과 나 사이, 그 존재의 심연을 넘을 수 없다.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고, 내가 울면 나 혼자 우는 세상에 위로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일상적인 성추행에 노출돼 있는
6년차 요양보호사 배연희(51)씨는 74살 할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하루에 4시간씩 한 달 80시간을 집으로 찾아가 설거지, 빨래, 집안 청소 등 허드렛일부터 식사와 목욕까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그러고서 받는 돈은 세후 51만원. 기본급은 없다. 시급이다. 이마저도 대상자가 병원에 입원하면 받을 수 없다. 심장이 안 좋은 할아버지는 최근 3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그 3주 동안 배연희씨는 수입이 없었다. 배씨가 가입된 서울 마포의 요양보호센터는 다른 대상자를 소개해주려 했지만, 그녀가 거절했다. 3년 가까이 친정아버지처럼 모셔온 그 할아버지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그녀에게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오후에 부업으로 하는 보험일이 아니면 돈 나올 데가 없었다.
물론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다리가 불편한 친정어머니를 보고 이 일을 배워두면 나중에 어머니를 모실 때 좋을 것 같아, 55만원의 교육비를 내고 240시간 교육을 받은 뒤 2008년 7월 국가로부터 자격증을 받았다. 그전부터 보험일을 했으므로 생업이 아닌, 어르신을 돌본다는 생각에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쉽지 않았다. “법으로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 정해져 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게 지켜지지 않죠. 집안일은 예사고, 심지어 어르신의 자식들 김장까지 도와주는 형편이죠. 대상자 보호자들은 요양보호사를 가사도우미로 여기거든요.” 몸이 고된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요양보호사들은 일상적인 성추행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우리가 할아버지들도 목욕을 시키거든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경우면, 팬티를 갈아입힐 때 도움을 청해요. 근데 대부분 모른 척하더라고요. 우리가 하라는 거죠. 또 목욕을 시키다 보면 비누칠을 해서 몸을 닦아드리잖아요. 그럼 당연히 할아버지 아랫부분도 닦게 되는데 몇몇 어르신은 발기를 하세요. 그러면 우리에게 손으로 해달라고 해요. 완강히 거부하고 보호자인 할머니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면, 어떤 분들은 ‘우리 영감이 원래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하세요. 우리도 엄연히 자격증을 갖고 하는 일인데 너무하다 싶죠.” 모진 세상이다.
이렇게 요양보호사의 처우와 근무여건이 열악한 것은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운영을 민간에 위탁한 보건복지부의 정책 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 현재 요양보호사의 관리와 운영은 각 지역의 요양보호센터에서 맡고 있다. 허가제가 아닌, 사회복지사 1명과 요양보호사 경력자만 있으면 누구나 센터를 설립할 수 있는 신고제인 까닭에 지역별로 센터가 난립해 있다. “센터는 보건복지부에서 한 푼이라도 더 타내려면 한 명이라도 더 요양보호 대상자를 늘리는 게 관건이에요. 그래서 대상자 보호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다 해주겠다며 우선 받고 보는 거죠. 안 그러면 다른 센터로 사람을 뺐기니까.”
8만원, 한 달 일하고 받는 아들의 월급
부당한 일을 당해서 보호자에게 항의를 하면 바로 요양센터로 전화해 민원을 제기한다. “한번은 이불 홑청을 꿔매달라는 거예요. 우리 세대만 해도 바느질을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아는 대로 했더니 바느질을 못한다고 보호자가 센터에 민원을 넣었어요. 요양보호 대상자 한 명이 아쉬운 영리업체인 센터는 우리를 옹호하기보다 보호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죠.” 악독한 요양센터 같은 경우는 근로계약서도 안 쓰고 휴일근무수당을 떼먹기도 한다. “보호자들의 몰상식한 요구와 요양센터의 횡포를 견제하며 요양보호사가 보람을 갖고 일하게 도와줄 공공기관이 없어요. 보건복지부나 구청, 공단 모두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할 뿐이죠.”
보건복지부가 ‘관리’를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한 타임 4시간인 요양보호 시간이 중간에 노는 시간이 많다며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으로 반씩 나눠하라고 권고했다. 차비도 안 나오는 월 50여만원의 월급을 받는 이들에게 왕복 교통비는 적은 돈이 아니거니와, 한 사람을 돌보는 일이 2시간으로 딱딱 나눠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탁상행정에 다름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우리 출근을 관리한다고 원래 하던 수기 대신 큰돈 들여 전자관리시스템을 도입했어요. 요양보호 대상자 집에 설치한 단말기에 출퇴근할 때마다 휴대전화를 대라는 거였어요. 사실 위치정보가 개인정보인데 우리 동의도 받지 않고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문제지만, 스마트폰이나 반지하 집은 인식이 안 돼 현재 거의 무용지물이 됐죠.” 오로지 요양보호사 ‘관리’에만 여념이 없는 보건복지부는 전자관리시스템을 이용할 때 드는 월 2천원의 정보이용료도 요양보호사들이 부담하라고 했단다. 요양보호사의 시급은 5320원이다.
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녀는 요양보호사의 권익신장을 위해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서울 마포·은평·서대문 지회장으로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지역 요양보호사들의 근무여건과 돌봄노동 실태를 살펴보기 위한 설문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요양보호사들의 처지가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는 현실에 협회활동에 더 매진하게 됐다. “다들 생업에 바빠서 활동할 사람이 없으니 저라도 해야죠.”
그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협회말고도 더 있다. 배연희씨에게는 지적장애 1급인 23살 아들이 있다. 3살 때 경기를 심하게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병원을 가지 않았다. 장애를 발견한 뒤엔 안 다녀본 병원이 없었다. “치료라는 치료는 다 받아봤어요. 집 한 채 값은 날렸죠.” 아들은 여전히 늦된 채로 남았다. 아들은 서울시가 세운 화장지 제조업체 ‘그린네’에 다닌다. 매일 출근하는 아들이 받는 월급은 8만원. 올해 3만원이 올랐다.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주간 보호시설에 아들을 맡기면 도리어 20만~30만원이 드는데 고맙고 대견하죠.”
“참 재밌게 살죠?”
배연희씨는 자전거를 타고 망원동에 나갔던 아들이 경찰서에 끌려간 2010년 10월6일을 잊지 못한다. 아들이 한 여자아이에게 반갑다고 다가갔는데 그 여자아이가 놀라 도로에 넘어져 다쳤다. 경찰은 아들을 마포서로 넘겼고, 놀란 아들은 그날 이후 말문을 닫았다. 아들은 재판을 받았다. 합의금 600만원보다 더 아픈 건 피해자와 경찰의 말이었다. “왜 이런 애를 혼자 내버려두느냐, 다시는 밖에 혼자 내보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라.”
“제가 참 재밌게 살죠?”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버벅거리는 내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마지못해 나도 웃었다. 난, 세상에 없는 위로라는 말을 찾아 그녀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후원계좌 국민 441501-01-340196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석명옥.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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