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결혼한 복태씨(오른쪽)와 한군은 사회적 부조로 결혼을 치렀다. 복태씨와 한군 제공
한겨레21
[레드 기획] 자기 삶의 중요한 절차를 재구성하는 사람들
일상복 입고 하는 결혼, 삶과 가까워지는 장례 당신의 결혼식, 당신의 장례식. 생이 명멸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당신을 알아보기 어렵다. 나 지금 웃고 있니? 내 표정만큼이나 당신의 표정도 읽히지 않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규격화된 소비 방식을 택한 우리가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인가. 그러나 자기 삶의 중요한 절차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삶을 음미할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모태솔로와 독거노인과도 같이 살아가리” 백종민(32)씨와 김은덕(31)씨는 원래 비혼주의자였다. 5월5일의 결혼식을 며칠 앞둔 그들을,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온 날 만났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스태프로 일하다 만난 그들이 연애를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똑같았다. “계속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싶어요. 가족 때문에 나를 포기하는 게 싫었어요.”(백종민) “결혼하면 아이와 남편만 있고 나는 없어지는 친구들을 보며 결혼이 두려웠어요.”(김은덕) 결혼에 대한 생각까지 완벽히 똑같은 서로를 보며 더는 결혼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해보자는 생각도 척척 들어맞았다. 얼굴 없는 청첩장 대신 두 사람의 연애사와 결혼 약속이 담긴 청첩책을 돌리고, 예식장 대신 인도요리를 하는 식당을 택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는 백종민씨가 디자인을 배워가며 책을 만들고, 김은덕씨가 책에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하객도 150명을 넘지 않도록 했다. 그들이 일일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만 불렀다. 결혼식에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대신 ‘결혼선언문’을 읽는다. 주례도 없고 축가도 없다. 백종민씨는 정장을, 김은덕씨는 흰 원피스를 입지만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전세금과 신혼여행, 살림에 드는 돈을 모두 합쳐도 7천만원이 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준비하는 ‘대안결혼식’은 실용주의보다는 낭만주의에 가깝다. 백종민씨는 회사에서 집까지 오는 길을 동영상으로 찍어 ‘너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영상을 만들어 김은덕씨에게 프러포즈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순간마다 무언가를 보태기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만 하려고 했다. 백종민씨는 소녀처럼 섬세하고, 김은덕씨는 소년처럼 명쾌하다. “사회의 틀에 자신을 맞추려다 쉽게 늙어버리거나 퇴보하지 않겠다”는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백종민씨와 김은덕씨는 ‘결혼선언문’에서 “집으로 투기를 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여행의 꿈을 실현시킬 것이며, 서로의 덕을 보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닌 만큼 생활의 순간마다 우리만의 가치를 찾겠노라”고 다짐했다. “‘모태솔로’(한 번도 이성친구를 사귀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독거노인인 친구들과 더불어서 살아가며 부모님께는 물질적인 효도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심을 갖겠다”는 약속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히는 가족주의에 대한 반란이다. 서로가 싫어하는 단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매년 타이로 여행을 가는 것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양보하기로 하고 그것을 결혼선언문에 적었다.
주위 재능 모아 ‘은혜 갚을 결혼식’
불합리할 뿐 아니라 항상 누군가에겐 불리한 결혼제도에선 매 순간 싸울 일이 생기지 않을까? “결혼하면 명절 때마다 양쪽 집에 찾아가 쫓기듯 인사드리고 나오는 게 싫었던” 그들은 “명절 때마다 여행을 가겠다”고 밝혔고, 부모님들도 이에 흔쾌히 동의했단다. 김은덕씨는 “진짜 운이 좋아요. 트이신 분들”이라며 감탄했지만 진짜 운이 좋은 것은 “결혼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상대를 만난 점이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복태씨(30)와 한군(22)은 자신들의 결혼식을 ‘은혜 갚을 결혼식’이라 부른다. 독립음악가인 그들은 당장 결혼해야 할 상황인데 돈이 없었다. 종교가 다르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양쪽 부모도 반대하는 결혼이었다. 사회적 기부 사이트 ‘텀블벅’에 자신들의 사연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결혼 비용을 후원해준다면 음식이든 공연이든 자신들의 재능을 활용해서 갚겠다는 제안이다. 친구들이 부조금을 보내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기부해서 400만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청첩장은 친구들이 그려줬고, 결혼식은 사회적 기업 ‘에코웨딩’의 도움을 받아 서울 성북구청에서 했다. 결혼식날 성북구청 옥상에선 조촐한 결혼식에 어울리지 않는 거나한 피로연이 열렸다. 회기동 단편선, 아마추어 증폭기, 조한석, 유자살롱 등 독립음악가들의 공연과 둘의 연애 이야기를 소재로 한 연극 공연이 벌어졌다. 물론 막판엔 복태씨와 한군이 팔 걷어붙이고 나와 열창했다. “특별히 대안결혼식에 대한 꿈을 꾼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조화하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죠. 둘 다 흘러가는 대로 살자는 주의여서 마침 돈이 필요한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부조를 받더라도 그걸 좀더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닌가 했고요.” 복태씨의 말이다.
결혼한 지 7개월, 사회적 부조로 치른 결혼답게 그들 주위엔 친구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이제 백일을 맞은 딸의 기저귀도 친구들 덕분에 장만하지만 누가 누구를 도와주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늘 문을 열어놓은 채 그들을 맞이하려고 노력한다. 복태씨는 덧붙인다. “가족을 책임지겠다고 어깨가 무거워지기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걸 배우죠. 요즘은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요.”
멀어진 꿈 “집에서 죽고 싶다”
이제 죽음을 말할 차례다. 지난해 7월 미술작가 이수영은 <죽음 항해>라는 퍼포먼스를 열었다. 작가는 ‘죽음항해자’ 50명과 함께 경기도 고양시 벽제 화장터와 구제역 매몰지, 국립 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를 돌며 입관 체험과 유서쓰기를 하며 산 자들에게 장례의식을 체험하게 했다. 왜 하필 구제역 매몰지였을까? 이 작가는 “TV에서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산 채로 묻히는 것을 보면서 저 원혼들을 어찌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죽음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순간인데 굳이 인간의 죽음을 따로 떼어낼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뭇 생명들과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자각으로, 죽음 하나하나를 징검다리로 해서 우리 생을 싱싱하게 같이 건너가보자.” 죽음항해를 마친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장례식은 ‘집에서 죽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같이했던 사람들과 장례를 공유해야 하는데, 죽음은 공유하지 않고 딴짓만 공유하죠.”
협동조합 방식의 상조업체인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에서 일하는 지음 사무차장은 “예전 마을 공동체에서 장례는 축제처럼 치러졌다”며 “지금 장례가 철저히 격리된 뒤로는 장례식은 장사 논리가 지배하는 상품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1994년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지내는 비율이 72%를 넘었다. 그러나 지금은 10명 중 8명이 병원이나 전문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지낸다.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지만 병원과 전문 장례식장의 손에 넘겨진 장례는 다양하고 인격적인 얼굴을 빼앗겼다.
지난 3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선 미용사 이상일이 자신의 장례식을 주제로 ‘라스트 뷰티’라는 전시를 열었다. 그가 미리 꾸민 자신의 영안실은 휴지로 접은 1만5천 송이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되고, 고인이 생존의 전투를 치르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샴페인 잔도 놓였다. 자신의 죽음을 통과의례로 직시하는 용기, 축제의 화려한 기운으로 죽음의 공포마저 쫓아버린 이 전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화두가 됐다.
서편제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며 ‘환송회’
자신들이 선택한 방법으로 치르는 결혼식이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드는 것처럼, 장례식은 돌아간 이들의 삶의 결을 비춘다. 지난해 1월22일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씨의 장례는 고인의 뜻대로 천주교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을 닮은 수수한 흰 국화가 관을 덮고, 흰 국화 바탕 위 분홍색 꽃으로 꾸며진 십자가도 소박”(<한겨레> 2011년 1월26일치)했던 장례는 “내가 죽거든 찾아드는 문인들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던 고인의 당부대로 부의금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의 혼을 지닌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씨가 세상을 떴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장례식엔 직계가족만 참석했고, 고인과 맏딸 유이화씨가 함께 설계한 서울 방배동 이타미건축사무소 사옥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장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마음을 모으는 일일지도 모른다. 추도식에서는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서편제> 가락이 흘러나왔고, 오정해씨가 직접 판소리 몇 토막을 노래했다. 이타미 준씨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는 가운데 참석한 사람들은 고인이 직접 레이블을 디자인한 와인을 나눠 마셨다. 추도식이라기보다는 환송연에 가까운 자리였다. 이날 참석한 이타미 준씨의 제자 진교남 간삼건축 본부장은 “슬프고도 위로가 되는 자리였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인연의 구심점들이 앞으로도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앞을 내다보는 자리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장례식은 입 다문 죽음에 말을 건네는 자리가 아닐까. 진교남 본부장은 추도사에서 이타미 준씨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오늘 선생님과의 인연과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기보다는 저희에게 보여주신 수많은 영감과 가능성을 토대로 더욱더 우리의 문화와 건축, 그리고 예술의 발전에 기여할 실력과 의지를 쌓고 선생님이 보여주신 평생 꺼지지 않는 삶에 대한 열정의 불꽃을 저희의 마음에 간직하려 합니다”라고 돌아간 이에게 고했다. 고인과 말을 섞노라면 드러나는 죽음의 얼굴은 뜻밖에도 그리 두렵지 않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박원진 교수는 라트 어린이극장의 예술감독이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로지 린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는 2010년 한국에서 돌연히 죽음을 맞았다. 장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주검이 운구되기 직전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관 주위를 둘러서서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를 부르고, 함께해서 기쁘고 즐겁거나 슬펐던 일을 2시간 넘게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에서는 조문객들에게 화환 대신 만장과 음식 부조를 하도록 권한다. 돈으로 성의를 표시하는 화환 대신 만장에 돌아간 이에게 하는 말을 적자는 것이다. 누구든 언젠가는 혼자 가야 하는 길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두런두런 넘어가는 것 말고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아직 모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일상복 입고 하는 결혼, 삶과 가까워지는 장례 당신의 결혼식, 당신의 장례식. 생이 명멸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당신을 알아보기 어렵다. 나 지금 웃고 있니? 내 표정만큼이나 당신의 표정도 읽히지 않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규격화된 소비 방식을 택한 우리가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인가. 그러나 자기 삶의 중요한 절차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삶을 음미할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모태솔로와 독거노인과도 같이 살아가리” 백종민(32)씨와 김은덕(31)씨는 원래 비혼주의자였다. 5월5일의 결혼식을 며칠 앞둔 그들을,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온 날 만났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스태프로 일하다 만난 그들이 연애를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똑같았다. “계속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싶어요. 가족 때문에 나를 포기하는 게 싫었어요.”(백종민) “결혼하면 아이와 남편만 있고 나는 없어지는 친구들을 보며 결혼이 두려웠어요.”(김은덕) 결혼에 대한 생각까지 완벽히 똑같은 서로를 보며 더는 결혼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해보자는 생각도 척척 들어맞았다. 얼굴 없는 청첩장 대신 두 사람의 연애사와 결혼 약속이 담긴 청첩책을 돌리고, 예식장 대신 인도요리를 하는 식당을 택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는 백종민씨가 디자인을 배워가며 책을 만들고, 김은덕씨가 책에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하객도 150명을 넘지 않도록 했다. 그들이 일일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만 불렀다. 결혼식에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대신 ‘결혼선언문’을 읽는다. 주례도 없고 축가도 없다. 백종민씨는 정장을, 김은덕씨는 흰 원피스를 입지만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전세금과 신혼여행, 살림에 드는 돈을 모두 합쳐도 7천만원이 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준비하는 ‘대안결혼식’은 실용주의보다는 낭만주의에 가깝다. 백종민씨는 회사에서 집까지 오는 길을 동영상으로 찍어 ‘너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영상을 만들어 김은덕씨에게 프러포즈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순간마다 무언가를 보태기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만 하려고 했다. 백종민씨는 소녀처럼 섬세하고, 김은덕씨는 소년처럼 명쾌하다. “사회의 틀에 자신을 맞추려다 쉽게 늙어버리거나 퇴보하지 않겠다”는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백종민씨와 김은덕씨는 ‘결혼선언문’에서 “집으로 투기를 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여행의 꿈을 실현시킬 것이며, 서로의 덕을 보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닌 만큼 생활의 순간마다 우리만의 가치를 찾겠노라”고 다짐했다. “‘모태솔로’(한 번도 이성친구를 사귀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독거노인인 친구들과 더불어서 살아가며 부모님께는 물질적인 효도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심을 갖겠다”는 약속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히는 가족주의에 대한 반란이다. 서로가 싫어하는 단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매년 타이로 여행을 가는 것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양보하기로 하고 그것을 결혼선언문에 적었다.
'대안결혼식'을 하는 이들은 결혼 이후에도 가족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가정의 상을 그린다. 백종민(왼쪽).김은덕 부부. 백종민. 김은덕 제공.
죽음을 삶의 일부로 재현하는 전시가 활발히 열리고 있다. 지난해 7월 구제역 매몰지 부근에서 '죽음 항해'라는 주제로 열린 이수영 작가의 퍼포먼스. 이수영 제공
이수영 작가의 '죽음 항해' 퍼포먼스. 이수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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